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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_69WinnGergeH_3-3_류한석 전도사
 작성자 : 류한석  2020-07-06 19:17:51   조회: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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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이름: Winn, George H.(위철치)

1. 생몰연도: 1882. 7. 14.-1963. 6. 18
2. 출신 및 소속: 미국 / 북 장로교, 정통장로교
3. 한국선교기간: 1920. 1. 4 - 1940 / 1948. 5. 18 - 1953
4. 연표
1909 북 장로교 소속의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 부산 선교부에 소속되어 전도와 계몽사업에 참여
1924 대구 선교부에서 활동
1925 서울 선교부에서 활동
1929 다시 대구 선교부에서 활동
1937 서울 선교부에서 활동하다가 일제에 의해 강재추방, 독립 후 다시 내한하여 활동
1948 은퇴 후 귀국
1955 플로리다 주 폴크시티에서 아내 Essick 선교사 사망
1963. 6. 18미국 아리조나주 투스콘에서 사망

5.가족사항
부인: Essick, Blanche (1883-1955. 6. 24)


Ⅱ. 선교사 소개

1. 사역 개관
위철치로 불린 George H. Winn 조지 윈 선교사는 베어드 목사, 브라운 의사, 어빈 의사, 아담스 목사, 루이스 체이스 양, 시릴 로스 목사, 시더보탐 목사, 월터 스미스 목사, 어네스트 홀 목사에 이어 17번째로 1909년 부산으로 온 미국북장로교 선교사였다. 그는 미국에서 출생하여 신학을 수학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뒤 1909 미국 북 장로교 선교부에서 한국으로 파송되었다.
그는, 1899년 내한하여 1900년부터 부산에서 일하던 중 첫 안식년을 맞아 1908년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전임이었던 시더보담 선교사는 가스폭발 사고로 순직하였고, 그의 후임으로 내한하여 부산지부에 배속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1914년까지 5년간 일했다. 그 후 대구지부로 배속되어 박낙현을 조사로 채용하여 교회 개척과 순회 사역 등으로 1926년까지 일했다. 그가 대구에서 지역교회를 돕는 사역을 전개하며 설립한 대표적인 교회가 ‘칠성정교회’였다. 위철치는 대구에서 1926년에는 서울지부로 옮겨갔다. 그 후에는 다시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사역하다가 1941년 일제에 의해 한국을 떠나 본국으로 돌아갔다. 해방 후 다시 내한했으나 1948년 한국을 떠났고 66살의 나이로 은퇴하였다. 1963년 6월 18일 미국 아리조나 주 투스콘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사역은 전도와 계몽 사업 중심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실제적인 복음전파와 의식 개선, 문서 사역과 지역 교회 순회를 중점적으로 사역하던 선교사였다.

2. 19세기의 선교적 정황
당시 영미권의 프로텐스탄트 선교의 시작은 1750년 - 1850년이라 할 수 있다.특히 프로테스탄트 선교는 일찍이 윌리암 케리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근대 선교를 위해 공헌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은 동인도회사가 인도의 풍부한 자원을 개발하였고 세계무역의 초석을 놓았다. 또, 대서양의 한편에서는 하나님의 성령의 움직임이 조용히 그러나 멀리 그 파급효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사무엘 밀즈로부터 시작된 미국의 선교활동이였다.
18세기 말엽에 개신교 선교활동은 영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최초의 미국 선교부는 1810년에 조직되었다. 이 19세기 동안 개신교 국가들이 하나하나 ‘이방세계’로 선교사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였다. 18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모든 세계 각국의 개신교 국가들이 선교지에 파견을 하고 있었다.
20세기에 세 가지 중요한 운동이 기독교 선교역사에 중요한 방향을 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신앙선교운동, 성경학교운동, 자발적 학생운동이었다. 이 세 운동은 19세기의 후반부에 태동되었으나 1900년대에 이르기까지는 열매를 맺지못하였다. 신앙선교운동과 성경학교운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자발적 학생운동은 1930년대에 막을 내렸다.

3.북장로교의 한국 선교

4. 위철치 선교사의 부산 선교
부산에 도착한 위철치는 우선 조선어 공부에 주력하였다. 동시에 부산에서 사역하기 위해서는 일본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와 같은 필요성으로 인하여 일본어 공부도 시작했다. 이 때 시작된 일본어 공부는 이후 주한 선교사들을 위한 일본어 교제를 편찬하는 배경이 되었다. 위철치는 에니 베어드 선교사의 한국어 교재와 같은 방식으로 일본어 교제를 편찬했다, 그 책의 재목은『일본어공부 50강 』 이었다. 이 책은 1914년 출판되었다.
위철치의 부산에서의 주된 사역은 교회 개척과 지역교회 순회였다. 그는 지금의 초량교회, 제일영도교회, 항서교회, 구포교회, 김해교회, 김해 시례교회 등을 돕고 순회했다. 그는 1913년 4월 9일 수요일 하오 3시 영도교회 제1회 창립당회가 열리는 곳에서 사회를 보았다. 참석자는 한득룡 목사와 이춘서 장로였다. 이때부터 위철치는 심익순에 이어 1914년 정덕생 목사가 제2대 담임목사로 부임할 때까지 이 교회 당회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본래 1896년 김치몽에 의해 시작된 영도교회는 부산부 서남편에 소재한 교회로서 심익순(Walter E. Smith) 선교사 담당구역이었다. 그러나 당회의 조직부터 위철치 목사가 이 교회를 관장하게 된다. 이 영도교회는 영선정교회 영선동교회 등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지금의 제일영도교회로 발전하고 있다.

5.블랑케 선교사와의 결혼
위철치 선교사는 1909년 미혼으로 내한했는데, 1910년에는 블랑케 에직(Blanche Essick, 1883-1955)과 혼인했다. 에직 양은 1908년 북 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대구에서 일하던 중 위철치와 혼인하여 함께 일하던 중 1955년 6월 24일 플로리다 주 폴크시티에서 사망했다. 위철치 선교사 부부는 Paul, Elinor, George, Julia, Thomas 등 3남 2녀를 두었다.

6. 위철치 선교사의 선교지 철수
미국북장로교회는 1891년 윌리엄 베어드의 선교 사역 이래로 1913년 말로 부산경남지역에서 사역을 마감하고 철수하였다. 이때 북 장로교 선교부를 대표하여 지역 조정 및 재산처분과 관련하여 호주선교부와 협의했던 인물이 위철치였다. 1913년 연례회의에서 호주선교부를 대표하는 선교사들은 북장로교 선교부에 지역 이양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였다. 이 안건은 북 장로교 선교부의 투표로 결정했는데, 50대 6으로 가결했다. 호주선교부는 부산과 밀양에 있던 북장로교 선교부 재산의 보전을 보장했다. 이때 재산 처분과 관련된 일을 책임 맡았던 인물이 북장로교 회계였던 존 갠소와 위철치였다. 그 결과 1914년 밀양의 재산은 호주선교부에 5,259엔으로 판매되었고, 부산 영선현의 부동산은 1919년 일본인에게 44,717.37엔에 매매되었다. 이중 2만엔은 만주의 새로운 선교지부 개설을 위해 사용되었다. 그리고 여자학교의 비품들은 서울의 여자학교로 이관되었다. 참고로 부기하면 미국북장로교 선교부가 지역 조정을 통해 호주선교부로 이관할 당시 북장로교 관할에는 101개 처의 교회 혹은 기도처, 1,887명의 수세자, 그리고 전체 신자수는 3,816명에 달했다. 이처럼 위철치는 5년간 부산에서 체류하면서 언어공부, 교회개척 및 지역교회 순회, 선교부 행정 등을 담당했다.

6.결론
당시의 미국 북 장로교의 선교 본부는 한국의 선교적 토양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었다. 동시에 교단의 사이즈가 작아 물질적인 지원도 그리 크지 않았다. 일제가 세운 교육기과 및 의료 기관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현지 상황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결국 철수라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윈 선교사 부부는 대구, 부산 등지를 돌며 경상도에서 중점적으로 사역했다. 윈 선교사는 교회개척과 지역교회 관리를 통해 불모지 땅인 경상도의 교회들이 태동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현재 윈 선교사가 개척하고 관리하였다는 교회들도 대다수 그래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100년이 훌적 넘은 교회들이 많다. 선교지를 철수하며 14년에 걸친 사역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그가 세우고 관리했던 교회들은 그가 떠나고 나서도 자급자족하여 오늘날에 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 초창기 그가 경상도 지역에 기친 복음의 열정에 기인한 사역들은 현대에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2020-07-06 19: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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