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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_3-1_33_ Brand, Louis Christian
 작성자 : 박요한  2020-07-06 19:53:08   조회: 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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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 Brand, Louis Christian / 브랜드 / 한국명: 부란도(富蘭道)
2. 생몰연도: 1894.8.1.-1938.3.1. 미국 브랜즈 스테이숀 출생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24-1938.3.1.
5. 연표
1894.8.1 버지니아 주(Brand’s Station)에서 출생
1917 데이빗슨대학 입학
1919 버지니아대학 의학부로 이전
1920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수학/ 알베르타 두들리와 결혼
1923 버지니아대학 의학과정 수료
1924.11 남장로교 의료선교사로 내한/ 군산의 구암기독병원에 부임, 순회하며 치료와 복으전도
1930 전주로 이전/ 기후문제로 건강 잃어 광주로 이전/ 광주 제중원에서 결핵전문의로 진료활동.
1938.3.1 결핵에 감염되어 소천/ 아내 Brand, Alberta Dudley 귀국.

6. 가족사항: Brand, Alberta Dudley(부인), Alice(딸)

1. 한국의 결핵 퇴치를 소망했던 브랜드

브랜드는 한국의 결핵퇴치라는 큰 소망을 품었던 사람이다. 당시 결핵은 그 자체로 죽음을 의미하는 병이었다. 조선의 의료기술로는 치료는커녕 죽음만을 바라보며 고통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도록 되는 비참한 병이었다. 그렇기에 브랜드는 더욱 이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건조한 공기로 환자의 늑막을 부풀려서 아픈 부위를 이완시키고 안정을 취하게 하는 치료법을 시행함으로 제중원은 결핵치료의 대표적인 병원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평생을 결핵환자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마음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그들의 육체적 아픔을 어루만지고, 그들의 영혼을 어루만지던 브랜드는 안타깝게도 결국 자신도 결핵에 걸려 44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

2.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흘려보냈던 브랜드 본 글은 필자(신호철 장로: 양화진 선교회장)가 선교문화신문 200호에 2006년 8월 7일에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 사랑 실천한 광주기독병원장 브랜드(Brand)” , 2018년, 11월 8일 접속



동료 선교사들은 그의 삶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되었고, 늘 하나님을 즐겁게 하려고 치열하게 살았다고 증언한다. 뉴랜드(Newland, L. T.)선교사는 그의 삶을 이렇게 회고했다.

“브랜드는 말과 행동이 예수와 같았으며, 매력적인 성격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놀라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온화하고 친절하며, 동정심이 많고, 전적으로 이타적이었다.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봉사했다. 한국인들은 그의 본성이 얼마나 착한지를 알았으며 그를 사랑했다. 그의 밑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감동을 받아 그의 온화함과 이타심을 본받으려 했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실력이 뛰어난 의사로서 좋은 성격을 지닌 인간으로 존경하고 사랑했다.”

이처럼 브래드는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동일하게 이웃에게 돌려주기를 원했던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자로서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이 수평적으로 이웃에게 끊임없이 뻗어나간 사람이었다. 그는 뛰어난 의술에도 불구하고 늘 겸손함으로 주변에 믿음의 본이 되었던 사람이었다.

3.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헌신적인 브랜드

이미 브랜드는 남장로교의 대학이었던 데이비슨대학 재학 시절부터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작정하였다. 선교사의 소명을 확인하고 다시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의대를 졸업한 후 1년의 수련과정을 과정을 마치고 남장로교 선교본부의 선교사로 1924년 11월에 파송받게 된다. 패터슨(Jacop B. Patterson, 손배순) 선교사의 후임으로 1926년 부임해서 1930년까지 군산에서 진료했다. 이후 광주 제중원에 3대 원장으로 부임하여 결핵퇴치에 온 힘을 쏟았다.
그러나 1933년 10월 26일 병원에 화재가 발생하여 큰 위기를 겪게 된다. 김수진, 『광주, 전남지방의 기독교 역사』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13), p130.
대부분의 약품과 의료기구와 함께 병원이 전소되었지만 브랜드 선교사는 신속하게 간호사 기숙사를 병원으로 전환하여 화재 이후 9시간 만에 도로상에 “병원은 정상 운영”이라고 게시문을 내걸고 지속적인 치료를 하였다. 화재로 인하여 병원의 직원들은 심기일전하여 급여의 15%를 병원 복구비로 향후 6개월간 자진 헌금하기로 하였고 의사들도 수술 환자를 직접 회복실로 운반하는 일까지 담당하였으며 병원을 재건축하는 일에 선교부, 병원직원, 광주시민, 병원에서 치료받았던 환자들이 함께 힘을 모아 협력하여 1934년 화재에도 잘 견디며 한국인에게 잘 맞는 온돌식 중앙난방시설을 갖춘 아름다운 새 병원을 갖게 되었다. 본 글은 광주기독병원 홈페이지 양림동산 밀알이야기에 2011년 10월 10일에 기재된 글이다. “생명까지 주는 밀알정신: 브랜드 선교사” 2018년, 11월 8일 접속.
브랜드의 헌신적인 삶을 보여주는 한 사건이 있었는데 탈마지(Talmage, John Van Neste)선교사는 이렇게 회고했다.

“브랜드 박사는 모교회에서 보내오는 연간 400$의 보조금만으로는 병원에 찾아오는 2천명의 환자를 무료로 치료할 수 없었다. 그는 단 한 사람의 환자라도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나의 해결책은 병원에 와서 치료비를 낼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무척 어려웠다. 미국 사람의 눈으로 보면 누구나 가난하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방법을 찾아냈다. 그는 치료비를 낼 수 있는 환자를 위해 큰 출입문이 달린 큰 대기실을 만들었고, 10m 정도 떨어진 곳에 작은 문이 딸린 작은 규모의 무료진료 환자를 위한 대기실을 만들었다. 진료는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조금이라도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큰 문으로 들어와서 큰 대기실에 앉았다. 그리하여 브랜드 박사는 문제를 해결하였다.”

4. 광주 양림동에 잠든 브랜드

광주 선교사 묘역은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와 인천 창학동 외국인 묘지 다음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 곳이다. 선교사들이 떠난 후에도 호남신학대학교에서 울타리를 두르고 철따라 벌초를 하는 등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이덕주, 『광주 선교와 남도 영성 이야기』, 83.
1930년부터 광주 제중병원에서 일한 브랜드는 결핵 전문의로 병원 안에 결핵 병동을 짓고 결핵 퇴치 운동을 전개하던 중 그 자신이 결핵에 걸려 마흔넷 나이로 별세하여 광주 양림동 선교사 무덤에 잠들었다. 이덕주, 『광주 선교와 남도 영성 이야기』, 74.
루트(Root, Florence Elizabeth)선교사는 브랜드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렇게 회고했다. 본 글은 필자(신호철 장로: 양화진 선교회장)가 선교문화신문 200호에 2006년 8월 7일에 기고한 글이다. “예수 사랑 실천한 광주기독병원장 브랜드(Brand)”
, 2018년, 11월 8일 접속


“그의 삶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였다. 그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즐겁게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도움을 받으러 오는 모든 이에게 보인 그의 행위에서 잘 드러났다. 아무리 늦은 시간에도 환자를 돌려보내지 않았으며, 제아무리 사소한 일에도 그는 사랑의 실천을 잃지 않았다. 병원이 불 탓을 때 그의 봉사 정신은 어느 때보다 명백히 드러났다. 겸손하고 다소 곤한 그의 성품은 그이 환자들을 편안하게 했다”

그의 묘비에는 “예수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쓰여 있다. 가족으로 부인과 두 자녀가 있었으며 부인 두둘리선교사는 한국에서 남편의 의료선교 활동을 지원하고, 이일성경학교에서 농촌부녀자와 청소년 교육을 담당했다. 남편 별세 후 자녀들과 미국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다가 1973년 2월 5일 별세한 것으로 전해진다.

5. 부란도가 죽고 난 이후
이후에 신사참배 강요를 둘러싸고 일제와 마찰을 빚은 남장로교 선교사들은 결국 한국에서의 철수를 결정했고, 이에 따라 같은해 폐쇄되는 비운을 맞았다. 광주기독병원이 호남지방에 끼친 영향 한규무,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부의 전남지역 의료선교(1898-1940),” 467
에 대해 차종순 교수는 “첫째, 질병치료에서 과학적 질병치료의 전환, 둘째, 여성 진료의 혜택으로 보건향상, 셋째, 광주의 의료인 양성, 넷째, 인도주의적 무료수술의 확대를 했음을 주장한다.
지금 대한민국이 누리고 있는 의료 혜택들은 이와 같은 선교사님들이 뿌린 씨앗의 결과였으며 이익 집단인 카톨릭 병원과는 다른 길을 갔다. 지금 대한민국이 선진의료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카톨릭의 희생이 아닌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와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연구 진행 방향 추천

1) 이만열 『한국기독교의료사』, 아카넷, 2003
2) George Thompson Brown, Mission to korea: 조지 톰슨 브라운 지음, 천사무엘, 김균태, 오승재 옮김 『한국선교이야기: 미국 남장로교 한국 선교 역사(1892~1962), 동연, 2010
3) 김수진, 『호남선교 100년과 그 사역자들』, 고려글방, 1992
4) 한남대학교 인돈 학술원 『남장로교 의료선교 자료집』
5) 국립중앙도서관을 직접 가고 국회전자도서관 자료실 참고

이 분야의 연구가 부진한 이유는 병원은 교회, 학교와 달리 그 명맥을 유지한 사례가 많지 않다고 지적 한규무,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부의 전남지역 의료선교(1898-1940),” 467
한다. 카톨릭 병원이 추구하는 영리가 목적이 아닌 기독교계 병원은 적자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폐쇄되기 쉬웠기 때문이다. 선교부에 있어 의료선교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매우 중요한 분야이다. 그 의의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에 잘 정리되어 있다.
한국의 기독교 의료는 초기에 비록 선교사들이 추진한 것이기는 하나 한국이 근대화를 지향하던 시기에 나타난 개화의 가장 중요한 분야이면서 방편의 하나였다. 기독교가 한국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동반자로 나타난 기독교 의료는 당시 한국인이 서양과 기독교에 갖고 있던 편견을 제거하고 선교의 문을 여는 방편으로서 공헌하였다.
2020-07-06 19:5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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