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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08/ Appenzeller, Henry Dodge (1890-1953, M)/ Appenzeller, Ruth Nobel(1894-1986, M)
 작성자 : 박제윤  2020-07-06 23:58:07   조회: 407   
아펜젤라 선교사 / Appenzeller, Henry Dodge (1890-1953, M)/ Appenzeller, Ruth Nobel(1894-1986, M)

I. 기본사항

1. 이름: Appenzeller, Henry Dodge / 아펜젤라 / 한국명: 아펜설라(亞扁薛羅)

2. 생몰연도: 1889.11.6.-1953.12.1. 서울 서대문구 정동 23번지 출생

3. 출신 및 소속: 미국 감리교

4. 한국선교기간: 1917-1953

5. 연표1889 출생
1900 귀국, 미국
1907 Franklin and Marshal Academy 졸업
1912 Princeton University B.A
1915 Drew Theological School M.div
1917 New York University, M.A.
1917 감리교선교사로 내한
1918 결혼, Appenzeller, Ruth Noble
1920-40 배제학교 4대 교장, 조선기독대학 회계담당
1931 《신정 찬송가》 발행 공헌
1938 Pacific School of Religion, Ph.D
1939 배제학교 4대 교장 사임
1940-50 미국 귀국(하와이), 호놀룰루 제일 감리교회, 로스엘젤리스감리교회 담임목사
1950-1953 기독교세계구제회(Church World Service) 한국 책임자
1952 배제학교 재단이사장
1953.12.1. 뉴욕 감리병원에서 사망(64세), 양화진에 안장.

6. 가족사항부: Appenzeller, Henry G.
모: Appenzeller, Ella Dodge
부인: Appenzeller, Ruth Noble자녀: Appenzeller, Margaret Noble Appenzeller, Richard Dodge Appenzeller, Henry G



II. 선교사 소개: 아펜젤러 (Appenzeller, Henry Dodge)

1. 선교의 시작
H. D. 아펜젤러(H. D. Appenzeller)는 첫 번째 서양선교사였던 H. G. 아젠젤러 선교사의 장남으로 1889년 서울 정동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서울에 있는 외국인 학교에 입학하여 교육을 받았다. 그가 한국어와 한국문학에 능통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던 중 10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 아펜젤러의 안식년을 맞아 함께 귀국했다. 그의 아버지 아펜젤러의 1년 안식년을 마치고 다시 조선에 돌아온 1902년 군산 근방 어청도 근해에서 순교했다. 이 소식은 H. D. 아펜젤러에게 아버지의 대를 이어 한국 복음화의 소명을 받았다.
그는 1912년 Princeton University을 졸업하고, 1915년 Drew Theological School, 1916 New York University를 졸업했다. 아펜젤러는 1917년 감리교소속 목사로 아버지의 대를 이어 한국 선교사로 파송받았다. 1917년 9월 4일 선친의 뜻을 계승하여 감리교 선교사로 부인과 함께 내한하여 인천지방에 내한했다.

2. 1차 선교(1917-1940): 일제강점기
1917년 선교사로 조선에 도착한 그는 정동에 머물면서 날마다 기도했다. 그는 감리교 선교사 노블(W. A. Noble)의 딸인 루스 노블(Ruth Noble)과 결혼하였고, 신혼 생활도 잊은 채 인천에서 선교 사역에 열심을 다했다. 1920년, H. D. 아펜젤러는 아버지가 설립한 배재학교(Pai Chai Boys High School)의 제4대 교장으로 취임했고, 약 20년 정도 봉직했다. 그는 아버지가 세운 설립 목적을 항상 되새기며 배재학당을 미션학교이자 선교 기관으로 세우는 일에 전력했다. 그가 지은 배재학당 교가는 지금도 배재 중,고,대학교의 교가로 사용되고 있다. 그는 배제학당 교장이면서 동시에 인천 제물포 구역에서 선교사 감독과 부흥사로 사역했다. 그 지역의 대부분의 목사들은 배재학당 출신으로 아펜젤러의 영향을 받았었다. 그는 일제의 핍박 속에서도 학생들에게 신앙과 애국심을 끊임없이 교육시켰다. 1919년 11월 6일 ‘미국감리회한국연회’ 서기로 피선되어 1924년 9월 17일까지 다섯 차례나 그 직책을 수행하였다.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의 찬송가 개정작업에 동참하여 <신정 찬송가》를 1931년 발행하는데 공헌하였다.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할 징조가 보이자, 미감리교단은 한국과 일본에 있는 모든 선교사들에게 귀국명령을 내렸다. 그 시기에 일본은 당시 감리교 총리원 감독이었던 양주삼 목사에게 조선에 산재해 있는 전 감리교회에 신사참배를 지시했다. 이러한 신사참배의 강요가 H.D. 아펜젤러 학장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선교사들을 조선에서 쫓아내기 위해 선교사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이에 H. D.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일본인에게 넘겨주고 다른 선교사와 함께 미국으로 가는 배에 승선하여 귀국했다.

3. 중간기(1941-1950)
1940년 미국 하와이에서 아펜젤러 부부는 하와이에서 한국인 난민을 대상으로 구호 선교를 시작했다. 그는 한국전문가로 미육군 정보기관에서 한국전문가로 활동했다. 1946년 주정부는 그를 한국으로 경제 사절단으로 파견했고, 세계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상황을 전달하는 기자로 파견했다. 호놀룰루 제일 감리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시무했으며, 장소를 옮겨, 로스엘젤리스감리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했다.

4. 2차 선교(1950-1953)한국전쟁상황
한국 전쟁(1950-1953)이 발발했고, H. D. 아펜젤러는 1951년 한국으로 미 감리교 외국인 선교지부에서 재정을 지원받아 기독교세계구제회(Church World Service)에서 사역했다. 전쟁의 폐허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적인 필요를 채우는 방식으로 전했다. 세계구제회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한국인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종의 선교사’였다. 대략적으로 살펴본다면, 구호품보급, 일자리창출, 교육사업에 주력했다.
첫째, 그는 세계구제회의 책임자로로 한국전쟁 피난민들에게 옷, 의약품, 우유, 식량 등을 보급했다. 1951년에는 50만, 1952년에는 90만, 1953년에는 100만명의 한국인들이 혜택을 보았다. 또한 약 35cent에 해당하는 구호키트를 전쟁 중의 가정과 개인에게 제공했다.
둘째, 그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일자리를 창출했다. 일본에서 수입한 기구들로 대전에 직물방직공장을 설치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을 통해서, 고아, 과부, 전상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삶을 보존했다. 그저 일방적인 재화를 보급하지 않고, 무기력에 빠져있는 그들에게 일거리를 통해서 삶의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셋째, 배재학당을 정상화시킴으로 교육의 장의 기능을 다시 감당하게 했다. 당시 배재학당은 전쟁으로 인한 심각한 재정난과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설립하고, 본인이 재직했던 배재학당에 이사장으로 취임해서 위기의 상황을 잘 극복했다. 이로써, 전쟁 중이었지만, 일정수준의 교육이 이루어졌다.
그는 1951 Three Koreans I Have Known을 저술했지만 발행되지 않았다. 그의 사후 1991년 출판되었는데, 일제 강점기를 기준으로 전, 당시, 후에 대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5. 선교의 마침
1952년 11월 배재학교 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던 중, 개에 물려 광견병 예방 주사를 맞았으나 광견병 유사질환으로 발전되었다.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돌아갔으나 백혈구 부족으로 인한 건강 악화 되었다. 미국 뉴욕감리교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1953년 12월 1일 64세로 별세했다. 그의 장례식은 감리교단 빌딩(150 fifth Ave., New York.)에서 수요일 4시에 거행되었다. “내가 죽으면 한국 땅에 묻어달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유골함은 한국으로 옮겨져 1954년 10월 18일 정동제일교회에서 배재동문들이 모인 가운데 사회장으로 거행된 후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그의 묘비에는 “영원하신 팔이 네 안에 있도다.”라는 성구가 새겨져 있다. 이화·배재 연합성가대의 주악과 찬송(570장)과 신흥우 박사의 조사 등으로 정동교회에서 장례예배가 진행되었으며 양화진 제1묘역(자-5)에 안장되었다. 정동교회사에서는 ‘한국에서 나서 평생을 한국과 한국민과 한국교회를 위하여 가장 선한 친구로, 가장 착한 지도자로, 가장 귀한 목자로 봉사했다’라고 쓰고 있다.

6.아내, 루스 노블 아펜젤러(Appenzeller, Ruth Noble)
루스 노블 아펜젤러(Appenzeller, Ruth Noble)는 1892년 10월 17일 미국 감리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배재학당과 평양지방 감리사로 1934년까지 봉직한 노블(Noble, William Arthur. 魯普乙, 1866-1945)선교사의 딸로 1894년 6월 14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915년 Wyoming Seminary를 졸업하고, 1918년 New York Biblical Seminary를 졸업했다. 이후 1918년 7월 감리교회 파송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왔다. H. D. Appenzeller와 1918년 10월 결혼했다. 처음에는 인천에서 선교 활동을 하였으며, 서울에서 남편을 내조하며 감리교 선교사로 봉직했다. 1941년 강제 출국되어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윤성열 목사를 도와 Angels’ Haven이라는 복지 단체를 설립했다. Angel’s Haven 소년 연맹과 4H클럽을 결성했고, 한국 전쟁 고아들을 사랑으로 돌보았다. 남편인 가 병으로 위중해지자, 미국으로 함께 귀국해서 병을 간호했지만, 마침내 1953년 12월 1일 남편이 소천했다. 하지만 그녀는 슬픔을 이겨내고 홀로 한국에 돌아왔다. 감리교 선교사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을 최선을 다해서 수행했다. 1962년까지 정동에 있는 감리교선교사 게스트 하우스 책임자로 봉직하였다 1962년 그녀는 은퇴하고 미국(Glendale, California)으로 귀국했다. 16년 동안 독신으로 지내다가 1979년 6월 Cecil Kight와 재혼하고 남은 여생을 보냈다. 1986년 11월25일 92세의 일기로 소천했고, 유해는 한국으로 돌아와 1987년 1월 19일 정동교회에서 장례식을 거행하고 양화진 제1묘역 (자-5)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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