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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58 / McPhee, Ida
 작성자 : 주영찬  2020-07-07 12:07:17   조회: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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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1. 이름: McPhee. Ida./ 맥피/ 한국명: 미희(郿喜)
2. 생몰연도: 1881-1937
3. 출신 및 소속: 호주 빅토리아 주 탈봇 출생, 호주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11.10. -1937, 4. 13
5. 연표
1881. 호주 빅토리아 주 탈봇 출생
1910. 선교사로 지원, 디커너스 훈련소에서 교육받음.
1911, 10. 교육선교로 임명 받음.
1911. 10. 30. 찰스와 제시 매크라렌과 함께 배로 한국(부산)에 도착함.
1911. 10. -1912. 부산에서 머물며, 한국어를 배우고, 엘리스 니본과 시골 방문 여행,부산진 교회 출석하여 오른간 반주함.
1912, 6. -1912, 7. 평양에 설립된 한국어 학교 참석함.
1913, 4, 17- 1933. 마산 의신 여자 학교 초대 교장으로 부임함.
1913. 9. 의신 여자 학교 기숙사 사감 활동 겸임함.
1916- 1919 부친의 건강 악화로 호주로 일시 귀국함.
1932-1933. 데이비스 교장이 휴가를 떠나는 동안 동래인신여학교 대리교장.
1933. 마산에서 의신, 월영 유치원 운영에도 참여함.
1936. 진주 시원여학교와 유치원 행정 지원 업무 수행함.
1937, 4. 13. 심장천신에 걸려 테일러 의사 부부의 간호를 받았으나, 진주에서 순직함.
6. 가족사항: 미혼, 두갈드 맥피의(Dufald Mcphee)의 7남매 중 4째.


II. 선교사 소개: 맥피(McPhee, Ida 1881-1937)

성장과정
아이다 맥피는 1881년 빅토리아 주의 탈봇(Talbot) 근처에서 초등학교 교사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 역시 교사가 되었고 빅토리아 주에서 7개의 학교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녀는 키네톤(Kyneton) 교회에서 장로교청년연합회(Presbyterian Fellowship Association)에 가입했고 이 운동과 주일학교에 열정적인 일꾼이 되었다. 그녀는 부친이 걸어온 뒤를 이어 교사와, 교역자(Christian worker)로 일하다가 1910년 선교의 뜻을 품고 선교훈련원의 단기 교육과정을 마치고 1911년 10월 호주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하였다.

선교사이자 교육자, 맥피 아이다
교육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1911년 10월 30일 찰스와 제시 매클라렌과 함께 같은 배로 한국에 도착했다. 엘리스 니븐과 함께 몇 차례 광범위한 시골 방문여행을 했고, 주일에는 부산진 교회에 출석하며 오르간을 반주했다. 또한 아미 왓슨이 아플 때 간호차 마산에 머물기도 했다.

그녀는 1912년 6월 한 달 동안 평양에 새로 설립된 한국어 학교에 참석했고, 9월에는 나피어와 함께 새로 건축된 집으로 이사했다. 내한 초기에는 부산에서 엥겔(G. Engel)목사, 맥켄지(J. McKenxie)목사를 비롯하여 니븐(A. Niven), 무어(E. Moore), 케리(Kelly) 여성선교사와 함께 거주하면서 한국말을 배우며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1913년, 마산으로 이주하였으며 이곳에서 창신 학교를 분립하여 1913년 4월 5일 설립된 의신여학교 초대 교장으로 봉직하였다.

이에 앞서 마산에서는 아담슨(Adamson)선교사를 중심으로 1909년 8월 19일 창신학교의 설립 인가를 받아 구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제도 아래 남녀의 평등권을 교육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남녀공학제의 혁신적인 교육 제도가 시행되었다.

그러나 운영 과정에서 이를 기피하는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다. 1913년 2월 경, 마산 창신학교에는 남녀 아이들이 여전히 함께 공부하고 있었고, 마산교회에는 160명의 어린이들이 출석하고 있었다. 너무 개방적으로 하자니 학부형들의 반대가 심했으며, 엄격하게 통제하자니 학생들의 반대가 거세었다. 이와 같이 남녀공학이 어려운 문제에 부디 치자 결국 남, 여 학교를 독립적으로 경영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 판단하고, 호주선교부의 후원으로 창신 학교에서 26명의 여학생을 분리하여 마산지역의 최초 여학교로서 의신여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9월에는 학교 기숙사가 완공되었고 맥피는 사감 활동도 겸임했다.

그리하여 맥피 선교사가 초대교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의신여학교는 호주선교부가 직영하는 동래 일신여학교에 이어 부산․경남에서 두 번째 여학교로 출범하게 되었다. 학교 부지는 상남동 노비산 언덕 위 호주선교사 사택 일부와 주위 일대를 사용하였으며 창신 학교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매학교로 발전했다.

결국 맥피선교사는 의신여학교 설립당시부터 초대교장으로 부임하였고 그 후 24년의 선교활동에서 1917년과 1932-33년의 공백기간을 제외한 대부분을 학교의 교장으로 지냈다. 그녀의 지도력 아래서 학교는 학생 수가 28명에서 330명으로 확장되었다. 동시에 그녀의 교사훈련 능력은 많은 어린 교사들에게 유익을 주었다. 그러나 그녀의 선교활동의 범위는 학교에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그녀는 낮에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여성들과 소녀들을 위해 야간 학교를 열었다. 그녀는 마산교회에 주일학교를 발전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쏟았는데, 다른 종교를 믿는 부모들의 어린 아이들을 주일 학교로 인하기 위해 어린이 전도를 활성화시켰다. 맥피는 또한 마산 시 안에서와 주변 지역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반을 가르쳤다. 그녀는 순회사역과 성경 교육을 대단히 즐거워했다.

그녀는 1932-33년 데이비스 교장이 휴가를 떠나 있는 동안, 동래 일신여자중학교(Jane B Harper Memorial Girl’s School)에서 대리교장으로 일했다.

1937년 3월 초, 그녀는 심장 천식에 걸려 테일러 부부의 간호를 받았으나 4월 13일 세상을 떠나 마산의 무학산에 장사되었다. 그녀는 순직할 때까지 평생을 교장으로 봉직하면서 마산지방 여성교육의 요람으로 학교 경영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녀는 학교를 거쳐 간 많은 학생들로부터 깊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녀의 우정은 위대한 재능이었고, 그 영향력은 넓게 퍼졌다. 맥피는 마산교회 안에서 헌식적이고 열심 있는 성도, 힘 있는 전도자, 많은 사람의 친구, 몇몇에게는 “어머니”였다.

그러나 이 여학교는 1939년 7월 신사참배 거부로 조선총독부의 기독교학교 폐쇄령에 의하여 폐교되었다.

진주․부산을 드나들며 나눔의 삶에 힘쓴 맥피
맥피 선교사는 1916년 부친의 건강이 악화되자 호주에 일시 귀국하였다. 1919년까지 호주에 머물다가 다시 마산으로 돌아와 의신여학교 교장으로 봉직하였다. 진주와 부산을 드나들며 바쁜 일정 속에서도 나눔의 삶과 교육선교 사업에 열중하였다.

1933년, 맥피는 마산에서 2개의 유치원(의신, 월영) 운영에도 참여했다. 1925년 9월 엘리스(Ellis, Clare) 선교사가 1925년 9월 내한하여 통영, 거창에서 활동하다가 마산에서 1927년부터 유치원을 운영하면서 유치원 보모 훈련과 야간학교 교육을 담당하였는데 엘리스가 사임하고 귀국하므로 이를 인수하여 운영하게 되었다. 1936년, 맥피는 진주에서 시원여학교와 유치원 운영의 행정 지원 업무도 수행하였다. 진주에는 클러크(Clerke, Francis L)선교사가 1910년 3월 내한하여 배돈병원 초대 간호부장과 1925년부터 시원여학교 교장으로 봉직하였는데 1936년 그가 신병을 얻어 은퇴하고 귀국하게 되어 그 후속 조치로 행정 업무를 지원하게 되었다. 이밖에도 그는 성가대와 주일학교에서 활동하였으며 특히 마산지역 기독교면려회 운동에 최선을 다했다. 평일에는 틈을 내어 여성들을 위한 성경 공부 반에서도 활동하였다. 1932년부터 1933년까지 부산(동래)에서 일신여학교 교장으로 겸직한 바도 있다.

맥피의 삶에 대하여 스코트(Scott, Stella May) 선교사는 “우리의 따뜻한 친구(Our Big Hearted Friend)” 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학생들을 자식처럼 사랑했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그를 따르는 학생들은 어머니라고 부르며 감사했다. 항상 인정을 베풀며 다른 사람의 무거운 짐을 나누어지려고 힘쓴 <나눔(Sharing>의 삶을 살았다.”라고 했다.

맥피 선교사는 독신 여성으로 내한하여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아니하고 오직 한국의 여성 교육을 위하여 열심히 그리고 폭 넓게 활동한 고마운 선교사였다. 26년간 마산을 중심으로 경상남도 지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헌신을 통하여 많은 선교업적을 이룩하고 병을 얻어 1937년 4월 13일 56세를 일기로 진주에서 순직하였다.

그의 묘는 진주에 조성하였으나 1966년 10월 2일 경남노회 사회부 주관으로 마산으로 이장되었다. 묘비에는 생존 년대(1881-1937)와 “예수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11:25)라 쓰여 있다. 창신대학에 건립된 기념비에는 “경남지방 신여성교육을 위하여 26년간 교장으로 봉사를 하면서 이 지방 여성교육과 여성개화에 기여한 공로가 매우 크시다.” 라고 기록되었다.

선교위원회가 남긴 기념 메모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그녀의 삶은 그녀의 주변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의 감동(inspiration)이었다. 그녀의 친절한 성격은 만나러 오는 사람들의 기분을 북돋아주었다.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한 관대한 평가는 그들로 하여금 최선을 다 하도록 만들었다. 그녀의 최대의 은사인 넓은 마음씨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찾아 그녀에게 오도록 했고, 그녀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녀는 관대하게 자신을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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