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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47 / Irvin, Charles H.(1862-1933, NP) / Irvin, Bertha Kimmerer
 작성자 : 이지예  2020-07-09 11:59:56   조회: 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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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 과제 기말보고서
Irvin, Charles H.(1862-1933, NP) / Irvin, Bertha Kimmerer






I. 내한 선교사 총람
출처: “H. Irvin, M.D. Mrs. C. H. Irvin(Bertha Kimmerer),” 김승태, 박혜진 엮음, 『내한 선교사 총람: 1884-1984』 (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4): 287.

(어빈 / 安連 / 미국 / 미북장로회 원문에는 NP라고 되어 있으나, 이를 약어표에서 확인하여 ‘미북장로회’로 수정했습니다.
)
1. 생몰연도
1862-1933

2. 학력


3. 경력
1893.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1889 부산에서 여학교 설립 동의 교육가로 활동
1911 선교사직 사임하고, 남편과 이혼 후 도일하여 도리샤대학 교수로서 한인선교에 힘슴
1935 귀국
1940 미국 캘로포니아에서 사망

4. 가족사항
Irvin, Charles H.(남편)

5. 논저

6. 참고문헌

기독교대백과사전11권.
Irvin, charles H. (어빈 / 미국/ 미북장로회
1. 생몰연도 1862-1933 미국에서 출생
2. 학력 : 의학 수업을 마침
3. 경력 : 1893 북장로회 의료선교사로 내한하여 부산에서 활동
1903 전킨기념병원(->어을빈병원), 한국인 의사 양성
1906 나병환자를 위한 최초의 병원 설립(상애원), 한국 구라선교에 개척자적인 역활
1911 부산이 호주장로교 선교지역이 되자 사임하고 부산에서 개인자격으로 병원사업 유지, 사업으로도 성공
1911 여자문제 등으로 추문을 일으킴, 부인과 이혼
1933 부산에서 사망
4. 가족사항 Irvin(Bertha Kimmerer)(부인)

5. 논저

6. 참고문헌 기독교대백과사전11권.

II. 기독교대백과사전
어빈 1862-1933 북장로회, 의사, 한국명 어울빈, 미국출신, 본국에서 의학 수업을 마치고 1893년 북장로회 의료선교사로 부인과 함게 내한하였다.
부산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브라운의 후임으로 부산 선교부에 배속되어 중단되었던 의료사업을 재게했다. 처음에는 병원시설이 없어 곤경에 처해 있으면서도 외래환자 진료에 뛰어난 활약을 보여 짧은 시일내에 본궤도에 올려 놓았다.
부임 즉시 시약소를 차렸으며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몽클레어교회에서 선교비를 지원하여 몽클레어 교회목사 였던 전킨을 기념하는 병원(후에 어울빈 병원) 1903년에 설립하였는데 이것은 한국 내에 설립된 최초의 현대식 시설을 갖춘 병원이었다. 그는 또한 한국인 의사 양성에도 신경을 써 고명우와 같은 유능한 의사리를 길러 내기도 했으며 병원을 통한 복음전도사업에도 큰 성과를 얻었다. 1906년에는 나병환자를 위한 한국 최초의 병원(현 사애원)을 설립하고 영국 구라협의회 지원을 받아 한국구라선교에도 개척자적인 일을 하였다. 그러나 1911년 부산지역이 오스트레일리아 장로교 선교지역으로 확정되게 되면서 이에 불만을 품은 그는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개인자격으로 계속 부산에 남아 병원사업을 유지해 나갔다. 그는 특히 만병수라는 약을 제조하여 만병통치약으로 선전하여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제약회사를 법인체로 변경하여서 초량교회 교인 양성봉을 지배인으로 임명하여 사업을 관장케 하였고, 전국적인 사업망을 조직하는 등, 사업가로서도 크게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이후 개인생활이 궤도를 벗어나 여자문제로 추문을 일으켰고 말년에는 자기 병원 높은 장소에 동전 가마니를 갖다 놓고 돈을 던져 이것을 주으려고 몰려드는 주민들의 추태를 감상하는 광기를 부리다가 1933년 부산에서 사망하였다.
한편 그의 부인은 남편과 함께 내한한 후 1899년에는 부산에서 여자들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하여 여학교를 설립하는 드으 교육가로서 크게 활약하였다. 1911년 남편과 함께 선교사직을 사임하였으나 이후 스캔들로 남편과 이혼하고 일본에 건너가 도시샤 대학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사재를 털어 쿄오토 한인 교회 예배당 건축에 회사하는 등 한인선교에 힘쓰다가 1935년 귀국한 후 1940년 미국 캘로포니아에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개신교사; 기독교사연구;전휘집 18; 구미인조사록; 박원표, 개항 90년, 부산의 고령 1966;



찰스 어빈(Charles H. Irvin)[1862~1935]은 1862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어을빈(漁乙彬)이라고도 불렸다. 미국 북장로교[PCUSA] 소속 의료 선교사로 윌리엄 베어드(Rev. William M. Baird)[배위량(裵緯良)], 휴 브라운(H.M.Brown)에 이어 1894년 3월 부산으로 건너와 의료 활동과 지역 순회 전도 운동으로 1911년까지 약 17년간 선교사로 일하였다. 찰스 어빈이 부산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메리 콜린스 휘팅 시약소[Mary Collins Whiting Dispensary]’가 건립되었는데, 이곳은 미국 북장로교의 부산 의료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메리 콜린스 휘팅 시약소는 1903년까지 유지되었고, 시약소를 발전시켜 1903년 9월에는 정킨기념병원[Junkin Memorial Hospital]이 초량에 건립되었다. 이는 부산과 경상남도 지방에 세워진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었다.

정킨기념병원이 설립된 이후 약 8년간 약 6만 명의 환자가 치료를 받았는데, 그 중 9천 명은 어린아이들이었다. 또 2,500회의 수술을 시행하였고, 4,400회의 왕진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주도한 인물이 찰스 어빈이었다. 찰스 어빈이 선교사직을 사임한 때인 1911년까지 연 평균 6,000명~1만 명의 환자를 치료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정킨기념병원은 비록 부산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찰스 어빈은 부산과 경상남도 지방 나병 환자들을 위한 의료 사역에도 동참하였다. 의사 빈톤(Dr. C. C. Vinton), 스미스(Dr. W. E. Smith)[심익순(沈益順)] 등과 나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위한 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되었고, 이러한 활동이 구체적으로 추진되어 1909년 11월에는 나병선교회[The Mission of Lepers in India and the East]의 재정 지원으로 나환자 수용 시설인 상애원(相愛院)이 부산시 남구 감만동에 건립되었다. 상애원은 이듬해인 1910년에 한국 최초로 개원하였는데, 찰스 어빈이 여기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찰스 어빈은 1911년에 사임하였으며, 나병원의 운영은 호주 선교부에 위임되었다.

이상의 의료 활동 외에도 찰스 어빈은 지역 순례와 전도 운동을 전개하였다. 예컨대, 1894년 4월 30일부터 5월 12일까지 윌리엄 베어드와 동행하며 순회 전도 여행을 진행하였다. 그의 아내 베르타 어빈(Mrs. Bertha Irvin)은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가 1895년 부산에 설립한 남자 학교인 한문서당[The Chinese School]에서 교사로 활동하였으며, 1897년에는 고아나 극빈 여아들을 위한 소규모 야학을 개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존속 기간은 길지 못하였다.

1911년 4월에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5가 영선 고개에 어을빈의원을 개원하여 의료 활동으로 지역 사회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때 만병통치약인 만병수(萬病水)를 개발하여 환자들을 치료하였고 의사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1935년 부산에서 세상을 떠났고, 중구 대청동 복병산에 묻혔다.

미국 북장로교 의료선교사 찰스 어빈(Charles H. Irvin, 1862-1933)은 아내 베르다 어빈(Bertha K. Irvin)과 함께 1893년 부산선교기지(Mission Compound)에 도착한다. 1903년 부산 영주동에 기전병원(紀全病院, Junkin Memorial Hospital), 1909년 상애원(相愛院, 한센병원) 등을 짓고 의료선교에 박차를 가한다. 1911년 선교부에서 나와 어을빈병원을 개업한다. 어을빈제약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진 만병수(萬病水)를 만든다. 만병수로 크게 성공한 찰스 어빈은 거금 30만원을 독립운동자금으로 기부한다. 1919년 윤현진 집사는 30만원이나 되는 독립운동자금을 들고 직접 상해로 간다. 1921년 상해임시정부 재무차장(재무장관)으로 일하던 중 순국한다.

베르다 어빈은 1911년 일본으로 건너 가 도시샤대학 음악교수로 정착한다. 틈틈이 교토교회 조선인성도들과 교제한다. 조선인성도들이 공장에서 힘겹게 번 돈으로 교회부지를 매입하자 자신을 선교사로 조선에 파송한 미국 북장로교회와 일가친척에게 건축헌금을 요청한다. 남편 찰스 어빈에게 받은 위자료 전액까지 합쳐서 15,000원을 건축헌금으로 드린다. 교토교회 한 해 예산이 2,000원이던 시절이다. 교토교회는 1935년 교회당 완공하고 ‘주후 1935년 조선인을 위한 어을빈기념교회당’(Irvin Chapel for Koreans 1935 A.D.)이라 정초에 새긴다.


참고문헌

이상규, 『부산 지방 기독교 전래사』(글마당, 2001)
Baird, R., Richard H. Baird, 『William M. Baird of Korea, a Profile』(Oakland: n. d. 1968)
Rhodes, H. A., 『History of the Korean Mission Presbyterian Church U.S.A.-1884~1834』I(Seoul: PCUSA,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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