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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67/ Wilson, Thomas Edwin(1886-1917, SP)/ Wilson, Georgia Crane
 작성자 : 정슬기  2020-07-10 16:39:21   조회: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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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 내한선교사 자료수집
Wilson, Thomas Edwin(1886-1917, SP) / Wilson, Georgia Durham Crane

I. 기본사항
1. 이름: Wilson, Thomas Edwin(윌슨/미국/SP)
2. 출생: 1886년 11월 10일, Columbus, Arkansas, USA
3. 소천: 1917년 9월 17일(만 30세), Columbus, Arkansas, USA
4. 소속: 남장로교(SP), USA
5. 내한-이한연도: 1914-1917
6. 학력: 알칸사스대학, UTS(유니온 신학교), 루이빌신학교
1904-1909 알칸사스대학(Batesville, Arkansas)
1910-1913 유니온 신학 대학원(Richmond, Virginia)
루이스 빌 신학교(Lewisville, Arkansas)[단기과정]
7. 활동내역: 구암예수병원
8. 활동지역: 광주, 군산
9. 활동영역: 농촌선교, 의료
10. 경력
1909-1910 캄덴의 한 고등학교(high school)의 teaching school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목회함(Camden, Arkansas).
1912. 3. 4 선교사 지원
1913. 5. 7-1915 콜럼버스에서 약 2년간 목회(Columbus, Georgia)
1913. 10. 15 워셔토(Ouachita) 노회로부터 선교사 임명
1914 남장로교(SP) 선교사로 내한, 광주에서 6개월간 농촌선교
1914. 7. 14 워셔토 노회로부터 선교사 재임명
1915. 3. 1 내한, 광주를 중심으로 농촌선교 활동
1917. 5. 12 서울에서 결혼
1917. 6. 미국으로 귀환
1919. 9. 17 고향집에서 열병으로 소천
11. 가족 사항
아내: Wilson, Georgia Durham Crane
부친: Wilson, James Stephenson
모친: Wilson, Mattle Stuant
자녀: Wilson, Thomas Edwin(1918. 4. 15, Atlanta, Georgia, USA)
12. 논저:
13. 참고문헌
『미국장로교 내한선교사 총람』, 미국장로교 한국선교회 편[1884-2020], 미국장로교 한국선교회 2020. p. 200
『기독교 대백과 사전』 제12권, 기독교 대백과 사전 편찬위원회 편집, 기독교문사 1984. p. 512
II. 선교사 소개
황갈색의 곱슬머리를 가진 운동신경도 뛰어났던 한 잘생긴 청년 토마스 에드윈은 알칸사스의 콜럼버스의 한 조용한 마을에서 목회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다.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베이츠빌에 있는 아칸소 대학에 입학하여 고등 교육을 받았으며, 여기서 그는 목회자로 살 것을 서원하며 복음 사역에 대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조용하고 과묵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평소에도 자신의 가장 깊은 생각과 감점을 남에게 거의 털어놓지 않았다. 그래서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것에 대해서 어떠한 영향이 미쳤는지는 주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를 부른 것은 성령 하나님이셨다. 1909년에 대학을 졸업한 그는 모든 설교자가 가져야 할 사역을 위한 훌륭한 준비를 학교에서 경험했다. 그는 1년 동안 알칸사스의 캄덴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이 일을 했고, 그 후에 유니온 신학 대학원에 다니기 위해 버지니아의 리치몬드로 갔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3년간 신학을 공부하였다. 신학교에서 그는 원우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만장일치로 원우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사랑했고 존경했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확인하는 시기가 되었다.
1913년 5월 7일 유니온 신학교에서 모든 과정을 마친 그는 2년 동안 조지아의 콜럼버스에서 목회를 시작하였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그가 전선으로 나갈 수 있도록 준비 시켰으며 마침내 그 선교의 길을 열어 주셨다. 1913년 10월 15일 워셔토 노회로부터 선교사 임명을 받은 그는 1914년 6개월간 광주를 중심으로 농촌선교에 힘을 쏟았다. 잠시 본국으로 돌아간 그는 미국에서의 모든 목회를 정리하고 1915년 3월 1일에 자신의 생명을 쏟아붓게 될 한국 땅을 향해서 항해를 시작했다. 그는 광주를 본거지로 주변 농촌 마을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시간과 힘을 쏟아 복음을 전파하였다.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노력이 하나둘 결실을 맺어가기 시작할 때쯤 그는 병명을 알 수 없고 치료법도 찾을 수 없는 어떤 불가사의한 병에 걸리고 말았다. 병의 치료를 위해 서울에 가서 이것저것 검사를 받았지만, 원인불명의 이 병을 치료할 수는 없었다. 병 때문에 더 이상 선교활동을 할 수 없게 된 그는 본국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1917년 5월 12일에 그는 간호사였던 조지아 크레인 양과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5주 후 그들은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의 병은 전염성이 있었기에 그는 그의 고향집 마당에 텐트를 치고 병 치료를 시작하였다. 유명한 의사들을 찾아다녔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의 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찾지 못하였다. 치료를 위해 알칸사스의 핫스프링스(온천지)에서 잠시 동안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힘은 급속히 약해졌고 이제 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인 1917년 9월 17일에 그의 가족들은 그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누워있는 침대 주변에 둘러 앉아있었다. 그는 평온한 상태에서 아버지에게 “당신의 아들이 오늘 떠날 것이다”고 말했고, 나중에는 “끝이 왔다”고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그는 고통과 죽음을 정복하시고, 무덤을 땅의 안식처 가운데 가장 거룩하게 만드신 주님 앞에서 기뻐하며 보내졌다. 그가 한국을 떠날 때부터 몇 달 동안 종종 묻히고 싶다고 말했던 고택 묘지에 그는 안장되었다.
그는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로 남들로부터 이목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그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언제 어디서든 관심과 사랑을 받을 만큼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농장에서 보낸 그의 어린 시절은 그에게 건강하고 튼튼한 몸을 주었고, 그의 타고난 운동신경과 스포츠를 좋아하던 그는 학창 시절부터 여러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러기에 누구보다 건장한 신체를 가졌던 그가 병들어 돌아올 것이라고는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의 정신적 성취는 칭찬할 만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가 9살 때 짧은 교리문답을 암송했고, 학교와 대학, 신학교를 거치면서 공부에 집중하여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그가 암송을 하는 데 있어서 그의 가장 큰 포부를 이루지 못하였을 때, 모든 사람들은 그가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기회를 놓치기 전에 먼저 그 속에서 교훈을 배우려고 했다. 질병으로 몸이 쇠약해지는 가운데서도 한국어를 계속해서 공부할 정도였다. 그는 조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온유한 사람이었으며 영원한 진리에 대해 항상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태도는 내성적이었지만 그의 반에서, 혹은 후에 목회와 선교의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잘못된 일이 곧 일어날 것이라고 느꼈을 때, 그는 결코 말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그러한 그의 말은 무게가 있었다.
비록 2년이라는 짧으면 짧은 시간 동안 한국 땅에 머물다 갔지만, 윌슨 선교사의 생명은 전혀 헛되지 않았다. 물론 한국과 미국에 남아있는 그의 자료 중 광주에서의 사역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살아온 삶과 그의 성품을 보아 하나님께서는 그의 조용하고 온유하고 성실한 성품을 사용하시어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심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다음의 시는 1919년 1월 9일 지역신문에 실린 그의 부고 기사에 실린 시의 구절이다.

“I was a stranger there,
Heaven is my home;
Earth is a desert drear,
Heaven is my home,
Danger and sorrow stand
Round you on every hand,
Heaven is our fatherland,
Heaven is my home.“

“Here, at my Saviour’s side
Heaven is my home,
I now am glorified
In Heaven, my home.
Here are the good and blest
Those I love most and best
And here, too, I’m at rest
In Heaven, my home.“

“거기 낯선 사람이었네,
천국은 나의 집이네.
이 땅은 황량한 사막이네,
천국은 나의 집이네.
위험과 슬픔이 서 있네.
모든 손에 네 몸을 감싸고,
천국은 우리 아버지의 나라.
천국은 나의 집이네.”

“여기, 내 구원자의 옆에서.
천국은 나의 집이네.
나는 지금 영화롭게 되었네.
나의 집, 천국에서.
여기 좋은 것과 가장 좋은 것이 있네.
내가 가장 사랑하고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과
여기서, 난 쉬고 있네.
나의 집, 천국에서.”





III. 사진 및 기타자료

▲<10살 때 사진>
▲<고향 집 현관에서>
▲<집 뒷마당에서 누이동생 Mamie와 함께>
▲<콜럼버스 묘지에 있는 그의 묘비>
▲<1918년 1월 9일에 실린 그의 부고 기사>


IV. 참고자료
[서적]
- 『미국장로교 내한선교사 총람』, 미국장로교 한국선교회 편[1884-2020], 미국장로교 한국선교회 2020.
- 『기독교 대백과 사전』 제12권, 기독교 대백과 사전 편찬위원회 편집, 기독교문사 1984.
- 『전라선교 40주년 약사』, 김수진

[웹사이트]
- http://www.1907revival.com
- http://www.penhook.org/Edwin%20Wilson.htm
2020-07-10 16: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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