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복음주의연맹(WEA)은 미국장로교회(PCA)와 세계개혁주의협의회(WRF)가 회원으로 있는175년의 역사를 지닌 매우 건전한 국제연합기구 - 허위와 왜곡으로 가득찬 문병호 교수의 WEA 서울공청회 논문 - 세계복음주의연맹(WEA)은 1846년 결성된 복음주의연맹(EA)에 기원한 역사 깊은 건전한 복음적 국제기구이다. 성경의 완전영감과 무오성을 비롯한 매우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2021년 6월 8일 WEA 연구위원회 서울공청회에서 문병호 교수는 “WEA 신복음주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활동 비판: - WCC에 편승하여
(서울: 가리온, 2021)저 자: 김성태, 박용규, 이한수발행일: 2021년 9월 15일정 가: 15,000원페이지: 244p I. 책과 저자 소개세계복음주의연맹(WEA)이란 무엇인가?세계복음주의연맹(WEA)은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신학노선이 같은가?세계복음주의연맹(WEA)은 신학적으로 건전한 국제기구인가?최근 예장합동 일각에서 제게하는 대로 과연 세계복음주의연맹이 WCC와 로마 가톨릭과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 교회 일치운동을 전개하고 있는가?세계복음주의연
최근 코로나 상황에서 교단의 모든 교회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고투하고 있는 현실에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들과 더 나아가 세속화의 도전, 기독교 박해, 반기독교 법 제정 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온 한국교회가 기도하며 일치단결해야 할 때입니다. 이런 위기의 시기 지난 몇 년 동안 교단 안에 세계복음주의연맹(WEA)과 교류 단절을 주장하며 총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총신대학교와 교단 그리고 한국교회의 참된 회복을 위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표명합니다. 1. 세계복음주의연맹(WEA)은 1846년 설립된 1
(리폼드뉴스) 우리 3명의 교수들은 예장합동 교단이 가입하지도 않았고 가입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은 세계복음주의연맹(WEA)에 대한 교류 단절 여부 소모전을 중단하고 정말 필요하고 생산적인 일에 전념해야 할 막중한 시대적 사명을 확인하고자 세계복음주의연맹(WEA)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 것입니다. 우리 3명의 교수들의 입장에 대해 문OO 교수가 스승이자 선배교수이자 명예교수를 ‘은퇴교수’로 폄하하고 30년 총신 교수의 전문성을 가진 교수들의 의견을 ‘허위’ “악의적인 음해”라고 반론을 제기하면서 진실을 왜곡하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재
“이 글은 교단 목회자와 선교사의 사역적 필요를 돕기 위하여 세계복음주의연맹(WEA)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지에 대해 신학적 판단을 마련하고자 진행한 합신 교수회 세미나에서 발제한 글을 정리한 것이다. 참고로 합신 교수회는 이 글의 논지에 대체로 동의하면서 현재로서는 WEA가 교류를 단절할만한 이단이나 이단성을 주장하는 국제기관이 아니며, 오히려 보편교회 안에서 서로 교제하며 협력해야 할 기관으로 인정된다고 의견을 모았음을 밝힌다.” 이승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리폼드뉴스) 근자에 우리나라에서 “세계복
2021년 부활주일을 맞아 경기도 용인에 소재한 더빛교회와 한국기독교사연구소가주기철 목사님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며 한국교회 가운데 나누기위해함께 제작한 영상입니다.
2021년 부활주일을 맞아 경기도 용인 소재 더빛교회와 한국기독교사연구소가이 땅을 위해 목숨을 바친 루비 켄드릭 선교사의 섬김과 수고를 한국교회 가운데나누기 위해 함께 제작한 영상입니다.
부흥의 역사와 관련하여 지난 2천년의 기독교 역사를 고찰하다보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부흥의 계절을 허락하실 때 다양한 사람들을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사실이다. 신학훈련을 충실하게 받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만 아니라 평신도들을 들어 부흥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마치 사도행전과 초대교회 역사에 그가 12사도인지 일곱집사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성령의 강력한 부으심을 경험하고 성령의 권능을 받았는지 하는 것이 중요했다. 때문에 지난 기독교 역사는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도구로 쓰임 받은 것처럼 부흥의 계절을 위해서도
프랭크 비어즈리(Frank G. Beardsley)가 자신의 저서 미국부흥운동사(A History of American Revivals)에서 언급한 것처럼 “부흥운동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였다.” 일생동안 부흥을 사모하며 부흥을 연구했던 로이드 존스 역시 청교도(The Puritans)에서 똑 같은 고백을 했다. “분명히 교회의 진행과 발전 역사는 주로 부흥의 역사였고, 성령의 강력하고 예외적인 부으심의 역사였다.” 구약과 신약시대는 물론 21세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부흥과 영적각성을 통해 당신의 역사를 이끌어 오셨다. 워드(
에이피온 에반스는 이렇게 부흥을 정의한다: “어떻게 부흥을 정의할 수 있는가? 부흥은 성령의 주권적이고 즉각적이고 구원하시는 활동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편만감을 고양하고, 그리스도를 높이며, 교회의 삶을 활력있게 만들거나 일깨우는 등 그 영향이 광범위하고 강력하다. 하나님께서 부흥을 시작하시고, 유지하시고, 컨트롤하신다. 그래서 부흥은 하나님의 역사가 인간기구(조직)에 의해 수행되는 복음전도와 구분된다. 부흥은 복음전도를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차이점들을 구분시키는 것이다. 부흥은 또한 예행연습없이(unrehearsed
현대적 의미의 부흥운동 혹은 영적각성운동은 종교개혁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 중에서도 청교도운동과 경건주의운동은 근대 부흥운동의 중요한 영적 토양을 제공해주었다. 부흥이라는 말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도 청교도에 의해서였다. 1662년 헨리 베인(Henry Vane, 1613-1662)이 급하고 강한 부흥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그의 겸손한 시도에서 리바이벌을 “성령의 흘러들어옴”(effusion of the Holy Spirit) 또는 성령의 부으심(the outpouring of the Hol
일반적으로 부흥에 대한 이해는 크게 조나단 에드워즈 식 부흥이해와 찰스 피니식 부흥 이해, 그리고 오순절 은사주의로 대별할 수 있다. 에드워즈와 피니 두 사람이 부흥운동의 지도자로 부름 받은 시대적 상황과 오순절운동이 등장한 시기는 다르다. 에드워즈는 18세기 인물이고, 피니는 19세기 사람이며, 오순절운동은 20세기 현상이다. 약 1세기 씩 차이가 있었다. 그들이 활동하던 신학적 배경도 다르다. 에드워즈는 칼빈주의가 강하게 지배하는 시대적 환경에서 부흥운동의 지도자로 쓰임 받았고, 찰스 피니는 수정 칼빈주의 혹은 알미니안주의가 강
이후 무디의 후계자 토레이(R. A. Torrey)와 시카고 화이트 스토킹 구단의 야구 선수 출신 윌리엄 빌리 선데이로 대변되는 20세기 초엽 미국 부흥운동, 영국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이 땅의 부흥을 꿈꾸며 일생동안 부흥을 외쳤던 로이드 존스로 대변되는 근대 칼빈주의 부흥이 있었지만 이전의 부흥과는 비견할 수 없는 부흥이었다. 그러다 1957년 뉴욕집회를 통해 전 미주 지역 부흥운동을 견인한 빌리 그래함의 출현은 미국만 아니라 20세기 후반 전 세계에 부흥의 불을 지폈다. 1950년대 민족의 위기 가운데 민족적 영적각성이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