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교수의 16일 폐회예배 말씀

부흥의 핵심가치(배본철교수: 16일 폐회예배 말씀)

하박국3::2-3"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산에서부터 오시도다 (셀라)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100년전 이 땅에 하나님의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 부흥의 열매로 오늘날 세계교회 앞에 주목 받는 한국교회의 놀라운 성장이 일구어졌습니다. 오늘날,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인 2007년을 맞이하여 한국교회 안에 진정한 부흥에 대한 열망이 깊어져가고 있습니다. 100년전 이 땅에 부흥을 주셔서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게 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이 땅을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가 점점 드높아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저희 모두가 감격하는 것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부흥의 코드가 ‘하나됨’이라는 핵심가치 속에서 풀어져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된 한국교회를 위해서는, 그리고 진정한 부흥을 통해 한반도의 총체적인 변혁과 발전을 위해서는, 어느 한 두 교회나 기관이나 신학교의 힘만 가지고는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이 모두의 염원을 하나로 담아 집중된 기도의 힘을 모아야 할 때를 맞이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몸이라는 공동체 의식 속에서, 부흥을 위해 교회와 교회가 하나 되고, 세대와 세대의 간격을 초월하여 하나 되어가는 모습들을 우리는 이곳저곳에서 확인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교회 부흥 백주년을 맞아 새로운 부흥을 위해 수많은 기도와 드높은 간구를 드리고 있는 중입니다. ‘부흥이여 다시 오라!’고 소리 높여 외치기도 하고 또 ‘부흥이 시작되었다!’고 자축하는 찬양의 열기도 만만치 않지만, 집회가 끝나고 나면 마치 잘 차린 축하연에 다녀온 듯한 여흥의 분위기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점이 없는 듯합니다. 어떨 때는 여기에 또 저기에 진짜 부흥이 왔다고 외치는 소리들도 있지만, 그러나 그 떠들썩한 함성들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과연 언제 부흥이 왔었나 하고 의아해하곤 합니다.
부흥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부흥이 찾아온다면 과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하는 말입니다. 이 아리송한 질문에 대해 나는 단 한 마디로 답변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곧 ‘부흥의 핵심가치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곧 부흥’(The Revival is to live with the core values of revival)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이 점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묻고 싶은 것은 우리가 부흥, 부흥 외치지만 정작 부흥에 대한 뚜렷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실제로 부흥이 찾아올 때 그 어떤 점을 보고서 ‘부흥이 왔다’ 또는 ‘부흥이 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좀 심하게 말한다면 우리 중에는 부흥에 대한 어떤 미신적 관념 속에 쌓여 있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부흥이라는 것을 마치 어떤 현상학적인 즉 육감적(肉感的)이거나 가시적(可視的)인 판별기준을 통해 가늠해보려는 경향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참 부흥은 어떤 사건이라기보다는 언제나 지속적인 삶을 통해 그 증거가 나타난다고 봅니다. 어느 한 개인 속에 부흥이 찾아올 때 그 증거는 그의 변화된 삶속에 분명히 드러납니다. 어느 교회나 지역의 공동체 속에 부흥이 임할 때 그 증거는 그 공동체의 변화된 삶의 질속에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은 부흥이 한 순간적으로 임한다고도 하는데, 이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은 그 부흥이 어느 한 시점부터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과연 그것이 참 부흥이냐 아니냐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그 이후의 개개인이나 공동체 속에 나타나는 변화의 양상을 지속적으로 살펴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시금석이 바로 ‘부흥의 핵심가치’입니다.
부흥의 핵심가치는 특정한 시대와 지역적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의 특수성이 있을 수는 있으나, 그러나 그것은 핵심가치가 변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가치가 적용되는 상황의 다양성 때문일 것입니다. 이 말은 한국적 상황에는 부흥에 대한 한국적 핵심가치의 특수성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한반도의 부흥에 대해서 연구하는 신학자들과 여러 목회자들은 말하기를, 지금 우리는 한국적 상황 속에서 분별해낼 수 있는 부흥의 핵심가치를 다음 다섯 가지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신자의 회개(repentance of believers)
2. 교회의 일치와 갱신(unity and renewal of the Church)
3. 사회 변혁(social transformation)
4. 민족 복음화와 통일(evangelization and unification of nation)
5. 세계선교의 완수(accomplishment of the world mission)
이 중에서 네 번째 핵심가치인 ‘민족 복음화와 통일’의 항목에는 한국적 특수성이 반영되어 있지만, 나머지 모든 항목은 시대와 이념 그리고 지역을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정신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2007년 새해 첫 달부터 큰 규모로 진행된 기도집회인 ‘Transformation 2007’이나 ‘역사를 이루는 기도, Revival 2007’에서는 이러한 다섯 가지 핵심가치가 분명하게 추구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후 연속적으로 열리고 있는 여러 기도집회들에서도 이러한 가치관에 대한 강조가 현저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제가 강조하는 것은 ‘부흥의 실체는 곧 부흥의 핵심가치가 신자들과 교회들의 삶 속에서 명백하게 구현되어가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흥을 꿈꾸는 모든 이들이 부흥의 핵심가치에 대해 선명한 이미지를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다섯 가지 항목을 하나하나 짚어 보기로 합시다.

1. 신자의 회개(repentance of believers)
우리가 잘 아는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의 핵심은 바로 ‘신자의 회개’에 있었습니다. 평양 장대현교회에 모였던 그들은 대부분이 불신자들이 아닌 이미 교회에 출석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던 신자들이었습니다. 부흥의 불길은 이들에게 임한 것이고 그리고 그 부흥의 속성은 바로 신자의 회개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부르짖는 부흥의 실상은 사실상 더 깊은 회개(deeper repentance)와 그리고 지속적인 회개(continual repentance)의 정신이 나 자신을 점유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 믿을 때 한번 회개했으면 되었지 또 무슨 회개냐?”하고 반문하는데, 물론 죄인으로부터 용서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회개는 일생에 단 한번으로 충분하겠죠. 그러나 거듭난 이후 우리는 지속적으로 죄(sins)와 허물(errors)을 주님의 보혈 앞에 정결케 되어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이러한 더 깊은 회개와 지속적인 회개의 정신이 내게서 멀어질 때부터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둔해지고 거룩함으로부터 멀어져가게 됩니다. 그래서 일찍이 본훼퍼(Dietrich Bonhoeffer)는 신자가 은혜를 받아들이는 태도 여하에 따라 값싼 은혜(costless grace)와 값진 은혜(costly grace)로 나누었던 것입니다. 값싼 은혜, 그것은 잠자고 있는 영혼의 상태입니다. 값진 은혜, 그것은 부흥을 경험하고 있는 영혼의 상태입니다.
저는 믿기를, 성령께서는 100년 전 이 땅에서의 회개보다 오늘날의 회개에 있어서 좀더 깊은 차원을 자극해간다고 봅니다. 이 말은, 현대의 죄악성은 이전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교묘해서, 문화를 타고 들어오는 새로운 죄악성의 은밀함이란 성령께서 깊이 조명해주시지 않는다면 드러나기 힘들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공동체적 성격의 죄악성이 개개인과 깊이 연루되어 있는 부분 또한 많습니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 가정 공동체, 직장 공동체, 학교 공동체, 민족 공동체 등 이 모든 공동체의 일원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연계된 일원으로서의 책임감을 깊이 느끼며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드러난 죄성을 고백하며 뉘우쳐야 할 것입니다.

2. 교회의 일치와 갱신(unity and renewal of the Church)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고전 12:27). 하나님께서 품고 계시는 유기적 의미에서의 교회는 결코 나누어지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한 몸입니다. 신자들이 부흥을 경험하게 될 때 그리스도 안의 한 몸 의식에 충만 되어가며 따라서 하나된 그리스도의 몸을 일구어가려고 하는 정신이 그들의 삶과 사역 속에서 배어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한 지역 안에서 교회들은 지나친 경쟁과 개교회중심주의를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피를 나눈 한 형제로서 서로를 섬기며 세워주는 겸손한 교회들로 자라나게 되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부흥을 통해 교회는 자체적 갱신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 마음속에 있는 교회, 그것은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거룩한 교회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세상 앞에서 교회의 거룩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많은 현대교회 내에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우상들이 독버섯처럼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그것은 영웅주의(heroism)와 물질주의(mammonism)와 율법주의(legalism)입니다. 마태복음 23장은 예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을 향한 책망의 말씀인데, 사람들 앞에서 칭찬 받고 인사 받기 좋아하며 어디서든 꼭 선생이 되려고만 하는 영웅주의(5-7절), 성전의 금과 제단의 제물에만 욕심이 있는 물질주의(16절), 그리고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율법주의(13절)를 중점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적은 현대교회의 지도자들 역시 매우 겸허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만 할 교훈입니다. 부흥이 임하는 교회, 그 교회는 지도자들로부터 일반 신자와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뿌리 깊은 죄악성으로부터의 갱신을 경험하게 됩니다.

3. 사회 변혁(social transformation)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마 5:13,14). 교회 스스로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사회를 부패하지 않게 할 소금의 역할, 그리고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회를 밝혀 진리의 길을 보게 하는 빛의 역할,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상 가운데 두신 이유입니다. 물론 특별한 지역 상황에서는 비록 부흥이 확산되어간다 할지라도 사회-정치적으로 종교가 억압됨으로 인해 부흥의 핵심 가치가 실제적 사회 변혁의 결실에 이르기보다는 오히려 은둔주의적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현상을 보일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부흥이 사회 변혁과 연결되기 어려운 예외적 상황일 때이며 일반적인 경우에 있어서는 부흥이 사회 변혁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잠자던 교회에 부흥이 일어난다는 것은 곧 신자의 회개 그리고 교회 일치와 갱신의 정신을 통해 교회가 지닌 본연의 섬김과 사랑의 능력으로 지역사회를 변혁시켜나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교회를 향한 세상으로부터의 질책이 따갑다면 그것은 곧 ‘교회가 교회다워져라’(let Church be the Church)고 질책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부흥을 경험해 나가야만 합니다. 부흥을 통해 교회는 치유되고 힘을 얻으며 더 나아가 사회 속에서 책임 있는 변혁의 주체로서의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민족 복음화와 통일(evangelization and unification of nation)
한국적 상황 속에서의 부흥은 분단된 우리 민족의 비운을 실제적이면서도 근본적으로 해결해가는 힘으로 작용해갈 것입니다. 통일의 문제는 부흥의 핵심가치인 신자의 회개, 교회의 일치와 갱신 그리고 이를 통한 사회 변혁의 힘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민족 복음화의 문제도 마찬가지이겠죠. 물량주의적, 실적주의적, 그리고 개종제일주의적인 선교의 방법이 오늘날의 세계에 있어서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는 이미 역사의 교훈을 통해 우리는 배워왔습니다. 그러므로 설령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남북한의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역시 제 1,2,3 항목의 핵심 가치가 활성화되어나가지 않으면 한반도 내에서의 민족 복음화와 통일의 충만한 결실은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5. 세계선교의 완수(accomplishment of the world mission)
부흥을 경험한 크리스천은 세계선교를 위해 부름 받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고상한 자아상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능력으로 임하시는 목적과도 직결됩니다(행 1:8). 그래서 부흥을 통해 신자와 교회 공동체는, 마치 18세기 영국의 웨슬리(John Wesley)가 심령의 부흥을 경험한 이후 '온 세계는 나의 교구'(The whole world is my parish)라고 외치며 살아갔듯이, 그들의 모든 삶과 사역의 목적은 사실상 세계선교의 완수를 향해 전진해야 함을 깊이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부흥이란 곧 부흥의 핵심 가치와 함께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부흥의 핵심가치가 확산되는 것은 반드시 그 결과나 양상을 가시적으로 평가하는 실증적 차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그러한 가치관이 공유되고 확장되는 인식적 차원의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부흥의 핵심가치가 성령의 능력을 통해 온 세계에 확산되어가는 것, 이것은 곧 세계선교의 완수를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꿈이 충만히 구현되는 열매를 맺는 일이 될 것입니다.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7.08.22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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