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5년 09월 25일/아우구스부르그 종교화의

 

1555년 9월 25일 독일 내 루터란 프로테스탄트와 로마 카톨릭 사이에 맺어진 아우구스부르그 종교화의는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생존권을 인정 받은 최초의 공식적인 사건이었다.

무력과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자세로 개신교들을 제압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자 독일 내 루터란 프로테스탄트들은 자신들의 신앙과 종교적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1531년 슈말칼텐 동맹을 결성하여 대항하였다. 비록 슈말칼텐 동맹이 황제군을 대적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종교의 자유를 찾으려는 프로테스탄트의 노력은 계속 되어 드디어 1555년 9월에 아우구스부르그 종교화의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이 종교화약은 몇 가지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는 종교개혁의 권한을 각 지방 영주의 고유 권한으로 명분화시켜 황제나 백성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했으며, 둘째는 영주의 영에 거하는 모든 백성들은 영주의 종교를 따라야 하며, 영주의 종교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에게 맞는 종교를 찾아 이주할 수 있는 이주권을 허용했고, 셋째는 중세 이래 지속되어 온 교회의 영토는 로마 카톨릭이 소유권을 가지며 만약 교회령의 성직자들이 프로테스탄트가 되었을 때는 교회령에서 지급하던 급료를 더 이상 받지 못한다는 사실, 그리고 넷째는 상호간의 종교의 자유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을 명문화시켰다.

이 종교화의는 황제가 지배하는 보편국가에서 영주를 중심으로하는 근대 민족 국가로의 변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영주의 권한이 대폭 강화되어 1555년 이후 영주가 자기 관할권내 종교에 대해서 성직자 임명권, 재정권, 심지어 교리적 문제까지 관여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루터란에 국한된 현상이기는 하지만 로마 카톨릭이 개신교의 신앙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아우구스부르그 종교화의는 교회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7.08.2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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