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새벽 설교 -김용국교수

제목: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본문: 여호수아 14:6-12                          김용국교수 (침신대)

오늘은 비전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갈렙이 오래되고 소중히 간직하였던 비전을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말하며 당당하게 요구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4장 1절 이하에 보면 본문의 배경이 나오는데, 그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자신들이 함께 정복한 가나안 땅을 나누어 주는 내용입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갈렙은 여호수아에게 45년 전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라는 곳에서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위해 여호수아와 자신을 포함하여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을 때, 자신은 여호수아와 더불어 성실한 마음으로 보고한 사실을 말하였습니다. 즉 10명의 정탐꾼들은 아주 부정적인 보고를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용기를 빼앗아 버리고 간담을 녹게 할 정도로 불안하도록 만들고 서로 불평하게 하였지만, 자신과 여호수아는 믿음의 눈으로 능히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고를 하여서, 모세로부터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라는 약속을 받았음을 말하였습니다. 갈렙은 그 때 모세의 약속을 다시 상기시키면서 자신은 45년 동안 한 번도 그 약속을 잊어버리지 않았으며, 이제 나의 분깃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갈렙은 자신이 마땅히 요구할 수 있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을 결코 잊지 않고 있다가, 45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후 적절한 때에 당당하게 주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 자신의 비전을 위해 오래 인내하며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85세의 노구를 이끌고 헤브론 땅을 마침내 정복하여 자신의 땅으로 삼은 갈렙에게서 웅대한 비전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갈렙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1.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비전을 가진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비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주시는 비전을 바라보며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난 아브라함, 하나님의 축복을 갈망하여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이 된 야곱,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는 비전을 품었던 모세, 하나님과 조국 이스라엘을 향한 끊임없는 열정을 품은 다윗, 세계 선교를 향한 장대한 비전을 품고 일생을 불태운 바울 등과 같은 사람들은 비전가요 열정가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비전을 가진 사람들을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비전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비전이 없으면 인생을 허비하며 현실에 안주해 버리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갈렙은 8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품었던 비전으로 인하여 인생의 마지막 시기까지 결코 안주하거나 나태하지 않고, 열심을 품고 비전을 이루는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우리도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심지어 비전과 욕심이 섞여버리는 때가 있다고 하여도 비전을 갖는 것이 갖지 않는 것보다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비전이 없는 사람에게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고, 미래의 시간이 무의미한 것이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 욕심을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으로 혼동하는 일이 반복되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을 비전을 성취하는 것으로 하는 일들이 자꾸 반복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무서워서 비전을 품는 일을 포기하거나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을 수 없듯이” 정말로 중요하고 요긴한 비전 품는 것을 등한히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과 성령님의 영감하시는 은혜가 있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고, 또 열심히 기도하면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와 있는 1달란트 받은 종은 비전이 없어 인생을 허비한 생생한 예가 됩니다. 지난번에 설교하였듯이 마태복음 25장은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마 25장의 비유들은 한 마디로 말한다면 살아있는 신앙, 행하는 믿음이 없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혹은 참 신앙은 반드시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즉 진정한 믿음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나의 삶을 운영하는 능력이요 원리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이란 구원에 관한 사실들,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속죄의 죽음과 부활,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내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것 등을 깨닫는 것뿐만 아니라, 물론 지적으로 깨닫는 것이 필수적으로 필요하지만,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깨달음이 우리의 삶과 생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고, 우리가 점차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게 하는 깨달음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 25장은 신학적인 해석을 해야만 하는 장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실제적인 교훈을 얻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해석해봅시다. 1달란트 받은 종은 왜 시간을 허비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한 마디로 비전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인이 자신에게 맡긴 돈에 대해 어떠한 계획이나 꿈도 없이 그냥 방치한 것입니다. 별 생각 없이 그냥 저냥 살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주인은 그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정죄하였습니다. 주님은 게으른 것을 악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비전을 품으십시오. 인생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게을리 살지 마십시오. 주님이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셔서 영생을 주셨고, 성령님 지금도 우리 안에 계셔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과는 달리 너무도 소중한 날들, 사명의 날들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마땅히 주님이 주시는 비전을 품고 열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비전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비전을 심어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영향력을 끼치기를 원하는 사람 혹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특별히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선생, 사장, 책임자, 목회자, 어떤 공동체나 기관의 책임을 맡은 자들은 비전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비전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비전을 심어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화: 학생처장 회의 경험.
약 2달 전인 2007년 6월 중순 제주도에서 전국 대학 학생처장 회의가 열려서 참석하였습니다. 전국 대학의 학생처장들은 어떤 분들인지 보고 싶고, 또 어떤 주제들이 대학들에서 최근에 중요한 이슈인지를 알고 싶었고, 또 제주도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해서 유명한 땅 제주도도 한 번 가보자는 설레는 마음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한동대, 백석대 학생처장 교수님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 때 정말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뚜렷한 비전과 그것을 실천하는 헌신이 정말로 넘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그들을 통해 발견했습니다. 한동대와 백석대가 잘 되는 이유를 발견하였습니다. 포항의 끝자락에 있는 대학교 위치로서는 정말로 열악한 장소에 세워졌어도 한국에서 독특한 칼라를 내고 견실한 발전을 이룬 한동대의 성공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백석대 역시 급속한 성장을 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의 헌신 때문이구나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비전을 갖는 것은 의무입니다.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에 있어서 비전을 심어주지 못하는 것은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는 적어도 부모이거나 부모가 될 사람들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게 되어있습니다. 자녀들을 훌륭한 사람들로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자랍니다. 그들의 미래는 부모가 어떤 생각으로 그들을 키우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녀들을 위한 비전을 가시십시오. 그들이 미래 시대에 주역으로서 살아가는 환상을 품고 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를 기도하며 적극적으로 도와주십시오. 앞으로 한국을 이끌고 세계의 주역이 되는 사람들로 성장하기를 기대하며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큰 영광을 드러내고 주님의 몸 된 교회의 기둥 같은 일꾼들로 성장하도록 환상을 갖고 기도하며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직장에서도 비전을 품고 적극적으로 나가십시오. 승진도 기대하고 열심히 일하십시오. 사업이 번창하는 꿈을 꾸고 계획을 세우고 기도로 뒷받침하며 최선을 다하십시오. 장막터를 넓히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를 기대하며 큰 꿈과 비전을 품으십시오. 꿈꾸는 자에게 하나님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하나님 인도 하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 하나님 관심 갖고 보십니다. 비전을 가집시다. 미래를 위한 환상과 꿈을 가집시다.


2.비전 받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비전은 내가 적극적으로 소유해야 하는 것이지만,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여 얻어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비전은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민감하게 포착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정탐꾼들의 보고를 생각해봅시다. 이 보고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일생을 결정짓게 하는 참으로 중요한 보고였습니다. 10사람의 정탐꾼의 보고는 가나안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만, 그곳의 백성들은 크고 강하고, 그 성들은 너무도 강대하여 우리가 도저히 정복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10정탐꾼과는 달리 “그래도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라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가나안 땅을 점령하러 가지고 제안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10정탐꾼과 그 외 모든 백성들 심지어 모세까지고 가나안을 밟지 못하고, 광야에서 태어난 이스라엘의 후손들만 들어가도록 하셨습니다. 애굽의 삶을 경험한 자 중에서는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그곳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여기서 10정탐꾼들의 보고를 생각해봅시다. 그들의 보고는 결코 틀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여호수와와 갈렙보다도 훨씬 객관적이고 정확한 보고하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게 된 이유는 그들이 믿음의 눈으로,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의 눈으로 상황을 보지 않고 오직 인간의 이성에만 의지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그들을 해방시키시고, 광야의 생활가운데 수없이 역사하시면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명히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보이셨는데도 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의 눈으로,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오직 인간의 생각과 판단에만 의지하여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큰 진노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분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비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공표하였습니다.

우리는 비전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비전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전을 받기 위해 혹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비전을 발견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노력해야 합니다. 노력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를 많이 해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으며, 그 뜻대로 살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도에 최선을 다해야 이 혼탁한 세상에서 우리 신앙을 지키며, 나아가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비전을 이루어드릴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는 비전을 깨닫고 그것을 이루는데 있어서 동시에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를 많이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얼마큼 하나님께 시간을 드려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까? T.V. 시청하는 시간과 기도하는 시간을 비교해보십시오. 어느 것이 더 많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 함께 열심히 기도합시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가짐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도록 합시다.

3.비전은 소명, 사명과 연결됩니다.
갈렙이 자신의 비전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보면 비전은 사명 혹은 소명과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갈렙은 그가 원하는 땅을 거저 달라는 것이 아니라 정복해서 차지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즉 과거에 자신이 세운 공로에 따라 마땅히 내가 어떤 것을 취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이스라엘의 지경을 넓히기 위해서 자신과 자신의 지파 사람들이 전쟁을 통하여 그 땅을 차지하겠다는 것입니다. 갈렙은 자신이 지목한 땅 헤브론에 살고 있는 아낙 자손들을 물리치고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하신 말씀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라는 그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갈렙은 여호수아 다음의 실력자로서 얼마든지 가나안 땅의 좋은 알짜배기 땅을 받을 만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으며, 실제로 수많은 공헌을 세운 공로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 한 번 목숨을 건 전쟁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지경을 넓히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런 주장을 펼칠 때 그의 나이는 85세였습니다. 갈렙은 사명자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명자의 삶이란 이런 것입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 그것을 목숨 걸고 하는 것입니다.

갈렙의 비전과 포부와 열정은 정말 대단하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갈렙이 이러한 열정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의 사명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열정과 노력을 기울이는데, 이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명자가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을 내는 것은 마치 배고픈 사람이 밥을 먹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갈렙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가진 사람, 즉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가 여호수아를 대하는 태도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갈렙은 인간적으로 보면 결코 욕심이 없거나 배포가 적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여호수아와 경쟁관계가 될 수 있었고, 그럴만한 능력과 배짱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조국 이스라엘의 미래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여호수아의 보필자라는 위치를 받아들였습니다. 즉 그는 대의를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아는 사람으로서 욕심에 이끌리어 크고 중대한 일을 그르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갈렙은 이러한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자신의 사명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비전의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4. 비전의 최종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야곱, 모세, 엘리야, 다윗, 베드로, 바울, 어거스틴, 마틴 루터, 요한 웨슬레, 디 엘 무디, 빌리 그래함, 수많은 선교사님들, 그리고 옥한흠, 조용기 목사를 비롯한 한국의 수많은 영적 거장들, 또 수를 셀 수 없는 무명의 신실한 주님의 사람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위해 크게 쓰임을 받았는데, 그들이 큰일을 할 수 있었던 능력의 궁극적인 원천은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비전을 주시기를 간구해야 하고, 또 받은바 비전을 이루기 위해 열정을 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 우리 인생이 복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과정을 지나게 될 때, 우리가 가장 관심이 기울여지고 많이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모든 비전은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알기 위한 도구가 될 뿐입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노력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으로 응답하시지만, 우리가 영육 가운데서 강건하게 되는 큰 복을 주시지만, 우리는 그럴 때 하나님을 더 알게 되는 것이 우리의 비전을 이루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이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의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 원하십니다.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7.08.2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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