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10월 19일/네비우스 소천


산둥성 주재 북장로교 선교사 존 리빙스톤 네비우스가 1893년 10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비록 한국 주재 선교사는 아니었지만, 한국선교정책 수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다.

한국에 파송된 첫 선교사들은 선교 경험이 없는 신학교를 갓 졸업한 20대였다. 때문에 경험이 풍부한 선교사를 한국에 보내 달라고 오랫동안 기도해 왔다. 그때 산둥성에서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활동하던 프린스톤 출신 네비우스 선교사가 1890년 2월 서울을 방문해 2주 동안 자신의 선교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선교방법을 제시하자 그의 선교방법을 수정, 보완해 채택한 것이 소위 네비우스 선교정책이다.

네비우스 선교정책은 지금까지 자립, 자치, 자전으로 알려져 왔으나 곽안련 선교사는 그의 시카고 대학 철학박사학위 논문 <한국교회와 네비우스 선교정책>에서 네비우스의 핵심은 자립, 자치, 자전이 아니라 성경공부에 있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성경공부를 중심으로 한 선교정책의 결과 자립, 자치, 자전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1903년의 원산부흥운동, 1907년의 평양부흥운동은 물론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놀라운 성장은 네비우스 선교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7.10.0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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