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1978년) 10월 24일/마펫과 박형룡


연대는 다르지만 한국 장로교회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두 인물 마포삼열 선교사(-1939)와 박형룡 박사(1897-1978)가 하루 차이를 두고 10월 24일과 10월 25일 각각 세상을 떠났다.

맥코믹 신학교를 졸업하고 1890년 한국에 도착한 마포삼열 선교사는 한국장로교 발전에 이정표를 세웠던 인물이다. 그의 경력은 그의 영향력 만큼이나 화려했다. 그는 1901년에 설립된 평양신학교 교장이었고, 1907년 한국 첫 독노회 노회장이었으며, 1911년에 있었던 105인 사건에서는 주동자 가운데 한 명으로 지목되었던 인물이었다.

한국선교 25주년을 맞던 1909년에는 언더우드와 더불어 한국선교의 개척자로 인정받았고, 한국 선교 50주년을 맞던 1934년에는 한국의 윌리암 케리라는 칭호로 불리게 되었다. 평양을 한국의 예루살렘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도 바로 마포삼열이었다.

이 마포삼열의 신학적 이상과 보수주의 정신을 그대로 물려받아 선교사들의 신학적 전통을 후대로 계승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던 인물이 바로 박형룡이었다. 문화와 역사를 보는 관점에서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 주님이 보내주신 우리의 지도자였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7.10.0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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