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11월 03일/광주학생운동


11월 3일은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난 날이다. 광주학생운동은 "민족적 차별교육, 식민지 노예교육에 반대한 광주지역 학생들의 시위를 계기로 전국적인 독립운동으로 발전한 항일학생운동"이었다. 전남 나주에서 광주로 기차통학하는 후쿠다를 비롯 일본인 광주 중학생 몇이 광주여자고보 3학년 학생인 박기옥 등 한국인 여학생의 댕기꼬리를 잡아 당기며 희롱한 것이 발단이 되어 한국인 광주고보생들과 일본인 광주중학생들 사이에 편 싸움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문제가 더욱 확대된 것은 공정하지 못한 일본경찰들과 언론의 태도였다. 일본인 순경들은 일방적으로 한국인 학생들을 구타하면서 일본학생들을 편들었고, 일본인 신문인 광주일보는 사건의 정확한 보도는 생략한채 한국학생들을 매도하고 일방적으로 일본학생들을 두둔하는 기사를 실었다. 결국 경찰과 언론의 균형잃은 태도는 수많은 한국학생들을 자극시켰고, 드디어는 1929년 11월 3일 일본인 학생과 조선인 학생의 격돌로 이어지고 말았다.

일본 식민지 정책에 분노를 느끼던 학생들은 "조선 독립만세" "일본제국주의 타도" "식민지 교육 철폐" 등을 외치며 광주시가지를 돌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시민들도 시위대에 합류해 광주학생운동은 단순한 시위를 넘어 항일독립운동으로 발전했다. 엄격한 언론 통제에도 불구하고 광주에서 시작된 항일학생운동 소식은 전국에 알려져 전국적인 항일운동으로 확산되었다. 12월에 서울에서 수차례의 대규모 항일학생운동이 일어나 민족의 독립의지를 고취시켰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7.10.2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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