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11월 05일/독립협회 탄압

관리와 민간인 30여 명의 발기로 1896년 7월에 창립된 독립협회는 1898년 11월 5일 독립협회 지도자들이 대거 검거됨으로써 최대의 위기를 만났다. 국가의 자원을 확보하여 국민 경제의 발전을 기한다는 목적하에 설립된 독립협회는 창립 3개월만에 회원이 만여 명에 이르는 큰 단체로 급성장했다.

1897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열강에 의해 국내의 이권이 점탈되가는 것을 목격한 독립협회는 1898년 2월 9일 종로네거리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외국인에 대한 이권 허여를 즉각 정지할 것을 주장하고, 한노은행 설치내막을 폭로하였다. 또 외국의 재정고문, 군사고문의 부당성을 주장하여 그들의 해고와 침해된 주권 수호를 정부에 요청하는 동시에 정부의 시책을 규탄하고 나섰다.

그 결과 러시아인 재정고문, 군사고문이 철수하고 한노은행도 개설된지 수개월이 지나서 폐쇄되었다. 이완용이 독립협회에서 주출되고 윤치호, 이상재, 남궁억, 이승만이 독립협회를 주도하면서 더욱 활발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독립협회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자 정부는 독립협회를 배후에서 조정하는 서재필을 추방하고, 황국협회라는 괴뢰집단을 만들어 독립협회를 해산시키려했다.

1898년 12월 하순에 독립협회에 대한 최후 탄압령이 내려져 지도자들이 대부분이 체포되거나 투옥되었고, 일부는 도피하거나 망명하였다. 이로서 자주독립과 민권운동은 큰 시련을 만났던 것이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7.10.25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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