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11월 14일/예장의 WCC탈퇴

 

1959년 한국 장로교회는 또 한 차례의 대분열을 겪어야 했다. WCC 문제로 인한 합동과 통합의 분열은 신사참배 문제로 인한 1952년의 고신의 분열과 1953년의 조선신학교 문제로 인한 기장의 분열에 이어 세 번째 맞는 분열의 아픔이었다. 

고신과 기장이 분열되어 나간 후 장로교 총회는 WCC를 지지하는 이들과 WCC를 반대하는 이들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959년 제 44회 대전중앙교회에서 있었던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는 경기노회 총대문제로 논란이 일다 11월 14일 승동교회에서 총회를 속회하기로 하고 정회했다.

그러나 WCC를 지지하는 이들은 서울로 올라와 과거 친일파의 앞잡이 전필순 목사의 사회로 총회를 속개하고 회무를 처리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교단의 분열은 원치 않는다. 우리는 교단의 통합을 이룩하고 말겠다며 통합측이라고 명명했다.

반면 WCC를 반대하는 이들은 교단의 일치를 기다리다 예정대로 11월 14일 승동교회에서 총회를 속회해 WCC탈퇴를 결정했다. WCC를 반대하는 이들 역시 교단의 일치를 추구한다는 면에서 합동측이라 불렀다. 잠시 교단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붙인 이름이 5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고유명사가 되고 말았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7.10.25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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