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11월 29일/C.S. 루이스 출생


라이 도르셋이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 다음으로 성서적 기독교를 위하여 가장 인용되고 있는 대변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던 루이스(C.S. Lewis)가 1898년 11월 29일 북아일랜드 밸패스트에서 태어났다. 한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어권에 살고 있는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저술과 강의로 널리 알려진 루이스는 기독교인이 된 지 불과 16년밖에 되지 않던 1947년, 약관 49세의 나이에 <타임>지의 표지 인물로 등장할 만큼 세기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회의주의와 불가지론이 판을 치고 있는 현대 사상계에 혜성 같이 떠올라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던" 루이스는 "곤경에 처해있는 현대 복음주의자들을 격려하고 자유주의자들을 과감하게 공박"할 수 있는 적임자였고, 또한 그 책임을 충실히 감당하였다. 탁월한 지성, 천부적인 상상력, 문학인 답지 않는 신앙의 확신,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문필력이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져 그려낸 그의 40여 권의 저술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기독교를 대중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63년 6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 만큼 만인으로부터 인기와 영광을 독차지 했던 기독교 작가는 드물 것이다. 당대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그의 작품은 "계속하여 불신자들을 복음화하고 있으며 새신자들을 교육하고 그리고 연령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신앙을 고취"시키고 있다. 그가 일생동안 변함없이 기독교의 진리 위에 서서 담대히 기독교 신앙을 변호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 역사 속에 귀하게 쓰임받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1929년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결정적인 종교적 경험을 겪고 나서였다.

1931년 루이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 그의 작품이 그가 떠난지 반 세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인기를 더하고 있는 것은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와 신앙을 변호하면서 "문화적 기독교인들의 문체와 통속적인 전문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피하고 "지성인의 평범한 언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가르침과 이야기들을 실천적인 주제들에 적용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신의 탁월한 언어적 재능을 가지고 "주제 중의 주제인 그리스도를" 알려주는 데 일생을 헌신했고, 그 자신도 예측하지 못할만큼 엄청난 결실을 맺었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7.10.25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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