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이 살길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

북감리교 버딕(George M. Burdick)도 “넓은 의미에서 기독교 계몽과 기독교 교육이야말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자신들의 현재의 불행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충분한 힘이 될 유일한 무기”라고 믿었다. 모든 미션 스쿨을 통해 기독교의 근본 진리를 가르치고, “참 애국주의”(true patriotism)를 고취시킨다면 결코 민족의 미래가 어둡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따라서 그들이 볼 때 기독교 교육을 통한 민족계몽은 가장 시급한 시대적 과제였다. 그 즈음 신학월보를 통해 감리교의 최병헌이 “공부를 아니 면 미쳔 백셩”이 될 것이라며 지금은 “공부를 부지러니  ”라고 호소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확실히 선교사들은 위기야말로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의 상황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볼 때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한 몸을 구성하는 지체처럼 의미와 가능성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몸에서처럼 소용없는 지체가 없고 각 지체가 특별한 사역을 가지듯이, 각 사람의 인생이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 혹은 적어도 각 생명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것처럼, 만약 사람이 그 계획을 찾고 발견하고 성취하기에 지혜롭다면 꼭 마찬가지로 각 민족은 위대한 세계 역사에서 그들 자신들의 위치와 의무를 갖는다. 헬라는 세계에 미(beauty)를 주고 그 자신이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에 사라졌다. 로마는 세계에 법을 제공하고 그 자신이 법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사라졌다. 이스라엘은 세계에 종교의 기초를 제공하였으나 그가 세우지 않은 기초를 가졌기 때문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각 나라는 세계의 발전에 각기 어떤 역할을 해 왔거나, 또는 할 것이다.

상업도, 산업도, 학문성도 이 민족에게 주어진 몫은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이 세계에서 갖고 있는 중요한 사명은 무엇인가? “가난하고, 멸시받고, 압박받는 한국이” 장차 동양에서 해야 할 역할은 상업도 학문도 아니다. 분명히 이것들보다 더 큰 역할은 “동방의 칠흑 같은 암흑적 상황에 기독교의 진리의 빛을 가져다 줄 하나님의 메신저”가 되는 것이다. 이 빛, 곧 이 빛만이 동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3중국의 바시포드(Bashford) 감독이 말한 것처럼, “주(the master) 없는 승리(mastery)는 존재할 수 없고, 빛의 근원 없이는 빛이 존재하지 못하며, 램프 없이는 빛의 근원이 존재할 수 없다. 한국은 동방을 밝히는 유일한 램프, 곧 기독교 램프가 되어야 한다.”
항상 한국 민중의 편에서 말없이 민족과 아픔을 같이했던 펜윅이 작사해 한국인들에게 선물했던 당시 유행하는 노래 가사 속에는 국권의 상실이라는 가장 치욕적인 민족적 슬픔을 이길 수 있는 길, 그것은 곧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확신이 잘 담겨 있다:


대한 노

一 우리 대한 나라 四 맘 먹고 니러나
대한국을 위 하님 압헤셔
노합세 긔도합셰
열셩조 나신데 잘못된 일 복
 도라가셧네 죄 사을 밪어
모든 산 겻혜셔 긔독 의지로
노합셰 나라 셰오

二 우리 대한 일흠 五 긔 셰운 나라
헛지 랑가 엇지 니즐소냐
우리 대한 만셰만셰
그 산과 골이나 대한의 사 다
그 강과 슈풀 다 실 뉘쳐 곳처
랑 우리 힘써셔 나라를
노합셰 다시 셰오.

三 걱졍지 말고
하님만 의지
셩 밋셰
구쥬 밋 셩
셩경을 조츠면
아모 나라던지
핍박 업네

따라서 이 시대 한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어두운 세상에 참된 빛을 제공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다행히 당시 한국에는 라토렛이 표현한 것처럼, “기독교만이 민족을 구원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유일한 소망”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시대만큼 한국의 민족 지도자들이 기독교에 대해 열려 있었던 적도 드물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선교사들은 지금이야말로 일반 민중들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확신하였다.

“1904년과 1905년 언더우드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특히 주일 오후에는 감옥을 찾았다.” 투옥된 민족 지도자들을 정기적으로 찾아간 선교사는 언더우드만이 아니었다. 언더우드보다도 앞서 벙커(D. A. Bunker)와 게일은 이 일을 수년 동안 지속해 왔다. 그것은 을사조약을 전후해 정치적인 문제로 투옥된 “외로움과 절망에 빠져 있던” 수많은 고위층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감옥에서 읽을 것에 굶주려 있는 사람들에게 성경과 소책자와 찬송가가 주어졌으며, 그들은 이것을 탐독하였다.”

- 박용규, 평양대부흥, 일본의 대한침략정책과 민족의 수난 중에서 발췌 -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7.11.0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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