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 12월 01일/배재학당 신축
한국 근대교육의 개척자 배재학당이 1887년 12월 1일 자기 건물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1886년 6월 8일 개교하여 그해 7월 2일까지 불과 6명이었던 학생은 3개월 후 10월 6일에는 20명 재적에 18명이 출석했고, 1887년에는 67명, 1889년에는 82명이 출석하는 장족의 발전을 이룩하였다.
이렇게 학교가 급속히 발전하자 미국 북감리교회는 예배실 하나, 교실 넷, 도서실 하나, 교장실과 산업부용 지하실을 갖춘 문예부흥식의 아담한 현대식 건물을 지어주었다. 이것은 "미국인들이 한국인들에게 보내는 선물"이었다. 이 건물의 봉헌식에는 북감리교 워런(H. W. Warren) 감독이 직접 참여해 축하해 주었다.
고종께서도 인재를 배양하는 학당이라는 의미에서 이학교의 이름을 배재학당이라고 지어주었고, 뛰어난 학생을 관직에 등용함으로써 근대교육을 간접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스크랜톤 여사가 설립한 이화여자 대학교 전신 이화학당, 언더우드가 설립한 경신학교와 더불어 배재학당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민족의 지도자들을 육성해 민족의 미래를 밝혀주었다.
뿐만 아니라 직접 선교를 추진한 천주교와는 달리 의료와 교육 등 간접선교를 병행함으로 말미암아 개신교 선교의 문호를 열어주었고, 민중의 호응과 조정의 호응을 동시에 받았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7.12.04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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