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12월 08일/ 펜윅 선교사 입국  

19세기 북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나이아가라 사경회에 참석하면서 한국선교를 불태우던 28살의 한 젊은이가 1890년 12월 8일 선교회의 후원도 받지 않은 채 독립 선교사로 인천항에 입항하였다. 이 젊은이가 바로 한국 침례교 선교의 아버지,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이다.

그는 장로교나 감리교의 선교사들과는 달리 신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평신도 선교사였다. 그렇다고 자랑할만한 교육적인 배경도 없었다. 그런 그가 한국 선교사로 오게된 것은 다른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섭리였다. 신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오랫동안 주저하던 펜윅은 "사막에서 목말라 죽어가는 사람에게 훌륭한 유리 그릇으로 물 한 잔 떠다 준다면 고마워 하겠지만 낡아 빠진 녹슨 깡통에라도 가득히 물 담아 그에게 주면 그는 살게 될 것이다"는 월더의 말을 듣고 용기를 얻었다.

그가 한국에 와서 이룬 업적은 대단했다. 비록 자신은 "좋은 유리 그릇"이 아니고 "낡아 빠진 녹슨 깡통"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이 세상의 어떤 그릇보다도 귀중하게 사용하셨다. 침례교의 엘라 팅 기념선교회의 전도사역을 인수한 사람도, 1905년 8월 침례교단을 조직한 사람도, 그리고 1906년 침례교 초대 감독으로 취임해 침례교선교를 뿌리내린 사람도 바로 펜윅이었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7.12.0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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