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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12월 15일 / 게일 선교사 내한
2007년 12월 04일 (화) 16:29:24 평양대부흥

 

1888년 12월 15일/게일 선교사 내한 

 

1888년 12월 15일은 한글성경 번역의 선구자이며, 한글발전의 공헌자이고, 평양신학교 교수를 지낸 게일 선교사가 내한한 날이다. 스코틀랜드계 캐나다인으로 명문 토론토 대학을 졸업한 게일은 토론토대학 YMCA 후원을 받고 독립선교사로 한국에 왔다가 마포삼열의 권유로 북장로교 선교사로 적을 옮겼다. 한국에 입국하기 전 이미 불어를 통달할 만큼 어학에 뛰어났던 게일은 내한한 지 불과 5년 만에 한글문법책을 간행했고, 10년도 채 되지 않아 <한영대사전>을 출판할 만큼 한글에 능통해 "한국말을 한국사람보다 더 잘한다," "한글을 가장 정확히 이해하는 선교사"라는 평을 받곤했다.

게일의 가장 큰 공헌은 기독교의 영향력을 교회라는 울타리를 넘어 한국의 사회 문화 전반에 확대했다는 사실이다. 과장된 표현인지 몰라도 게일이 없었다면 교회의 대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은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수많은 불신자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했던 <천로역정>을 한글로 번역한 사람도, 한국의 민족적 상황과 위기를 해외에 널리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코리안 스케치>와 <전환기의 한국>을 저술한 사람도, 우리 민족의 뿌리 <한국역사>를 출판해 한민족의 오랜역사를 해외에 소개한 사람도, 그리고 한국 문학의 자존심 <춘향전>과 <구운몽>을 영역해 우리문학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소개한 인물도 역시 게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1903년에는 YMCA의 전신인 황성기독교 청년회 초대회장에 선출되어 기독교청년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연동교회를 담임하면서 이상재, 김정식, 이원긍, 이승만, 유성준, 안국선과 같은 독립협회의 지도자들에게 기독교 민족주의 신앙을 불어 넣어 기독교민족주의 운동을 불태워주었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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