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유명 부흥사의 입국


송도의 남감리교 선교사들의 간절한 기도와 소원, 길선주 목사의 장대현교회에서의 새벽기도 외에도 백만인구령운동을 촉진시킨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 1909년 가을과 1910년에 있었던 일단의 해외 부흥사의 입국이었다. 1909년 가을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이 장감연합공회에서“백만인을 그리스도에게로!”라는 슬로건을 채택한 몇 시간 후 윌버 채프만(J. Wilbur Chapman) 목사, 찰스 알렉산더(Charles M. Alexander) 부부, 로버트 학니스(Ro-bert Harkness), 조지 데이비스(George T. B. Davis)와 그의 어머니, 노톤(R. C. Nor-ton) 부부, 그리고 다른 몇몇 사람들이 한국에 도착했다.


이처럼 지명도 있는 외국 부흥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거의 동시에 대거 한국에 입국한 경우는 참으로 드문 일이었다. 이들은 평양대부흥운동을 통해 한반도 전역에 놀랍게 확산되는 부흥운동의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자신들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 입국한 이들은 전국을 순회하면서 부흥집회를 인도하여 한국교회 교우들과 선교사들에게 새로운 도전과 영적 충전의 기회를 제공했다. 세계적인 부흥사 윌버 채프먼과 찰스 알렉산더도 한국을 방문해 5일 동안을 지내면서 전국 주요 도시에서 집회를 인도했다. 이들 집회는 데이비스가 증언한대로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축복의 원천이었다.”그리스도를 위한 한국(Korea for Christ)의 저자 데이비스 역시 전국 주요 도시의 장감 선교부를 순회하면서 집회를 인도하였다.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 총무 아더 브라운 박사도 내한해 전국 주요 도시에서 집회를 인도하며 선교사들과 한국인들에게 많은 도전을 주었다.

한국을 방문한 체프만과 알렉산더 박사
뉴욕대학의 챈슬러(Chanceller)로 널리 알려진 헨리 맥크랙킨(Henry McCracken)이 9월 3일에 서울에 도착했고, 화이트(W. W. White) 박사가 9월 11일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 9월 10일에 서울에 도착했고, 같은 날 남감리교 선교회의 호스(Hoss) 감독이, 그리고 11월에는 미셔너리 리뷰(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의 편집인으로 재직하면서 세계 선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던 그 유명한 아더 피어선(Arthur J. Pierson) 박사가 입국했다.

1883년 견미 사절단을 만난 후 한국선교에 절대적인 기여를 한 볼티모어 여자대학의 총장 가우처(J. F. Goucher) 목사도 서울을 방문했다. 그는 최근 조직된 선교대회의 연장(Continuation) 위원회 위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교지의 기독교 교육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한국과 중국 등 동양의 선교지를 방문한 것이다. 호주 평신도 선교사 운동(the Laymen’s Missionary Movement)을 대표하는 두 목사 패톤(F. Patton)과 길랜더(W. Gillanders)도 그 해 11월과 12월 사이 한 달 간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을 방문한 이들 모두가 한국교회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1910년 10월에 열리는 서울 전도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 교회가 한국에 있는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한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 여러 명의 사역자들을 보냈다.

  • 기자명 관리자
  • 입력 2006.07.0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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