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화와 민족계몽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기독교

진명, 숙명, 중동, 그리고 1907년 평양의 대성학교와 정주의 오산학교 등 청일전쟁 이후 한국인들에 의해 수많은 사립학교들이 설립되어 1910년까지 각급 학교의 총 수가 무려 3,000여 개에 달했다. 여기서 교육받은 이들이 국민계몽운동에 앞장 서는 경우가 많았으며, 항일운동의 지도자들 역시 대부분 이들 학교에서 배출되었다. 그것은 이들 학교가 기성 중국의 경전(經典)이나 사서(四書) 중심의 교육을 지양하고 역사, 지리, 법학, 경제학 등 인문사회과학 전 분야를 가르쳐 새로운 세계관과 국제질서(國際秩序)를 파악할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역사적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들 학교에서의 가장 중요한 교육의 목표가 “민족의식 고취”였기 때문에 여기에서 교육을 받은 한국 젊은이들은 민족의식, 역사의식, 국가의식이 고취되지 않을 수 없었다. 천도교에서 설립한 보성법률상업학교, 보성학교, 동덕여학교, 그리고 그들의 기관지 만세보는 친일단체 일진회(一進會)를 공격하는 한편 민족주의 계몽에 앞장 섰다

그러나 한국근대화와 민족계몽을 통한 민족주의 사상의 고취에 가장 크게 기여하였던 것은 기독교였다. 1882년부터 출간된 한글성경, 1895년 캐나다 선교사 게일에 의해 번역된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은 단순히 기독교 사상의 유포뿐만 아니라 한국의 근대문학을 앞당기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한국인들의 의식변화와 정치, 문화, 계몽운동은 서양의 신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그 일은 미션스쿨이 담당했다. 1885년에 설립된 배재학당, 그 뒤를 이어 설립된 이화학당, 경신학교, 정신여학교, 숭실학교, 숭의여학교 등 선교사들에 의해 서울과 평양에 설립된 미션스쿨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기독교 민족주의 의식을 강하게 불어넣었다. 즉 미션스쿨들은 기독교 정신뿐만 아니라 서양역사, 문학을 통해 서양근대민주주의 정신을 함양시키고 기독교 정신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 민족주의 사상을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고취시켰다. 특히 이들 미션스쿨들은 신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입학할 수 있어 전통적인 유대교육을 서양근대교육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했다.

-박용규, 한국기독교회사2권중에서-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1.0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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