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01월 00일/ 장로교공의회  

 

1884년에 한국선교를 시작한 미북장로교 선교회, 5년 후 1889년에 한국선교를 시작한 호주장로회 선교회, 그리고 1892년에 그 뒤를 이은 미남장로교 선교회는 선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1893년에 장로교공의회를 조직하였다. 장로교공의회 조직은 한국교회사에 몇 가지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첫째는 한국에 장로교 중심의 개신교를 이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남북장로교 선교회, 호주장로교 선교회, 그리고 1898년에 입국한 캐나다장로교 선교회는 독자적으로 한국 선교를 추진하지 않고 하나의 장로교를 세우기 위해 모든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감리교가 1930년에 가서야 하나의 감리교를 이룬 반면에 장로교는 선교 초기부터 4개의 선교회가 독립적으로 선교하지 않고 공의회를 조직하여 효과적으로 선교를 추진했다. 그 결과 한국에 장로교 중심의 개신교 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둘째는 장로교 공의회가 한국선교를 가속화시켰다는 점이다. 1890년의 네비우스 선교정책, 성서번역, 1901년의 평양신학교 설립, 1907년의 한국의 독노회 조직, 그리고 1912년의 한국의 최초의 총회 설립에 이르기까지 네 개의 장로교 선교회는 공의회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선교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1.08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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