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01월 06일/평양대부흥운동 

 

1907년 1월 6일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사경회를 시발로 대부흥운동이 일어났다. 이것은 단순한 부흥운동이 아니라 1730년대의 미국의 1차 각성운동과 같은 진정한 회개운동이었다.

1903년 원산부흥운동부터 일기 시작한 성령의 불길이 4년 후 평양의 장대현교회에서 강하게 일어난 것이다. 억누를 수 없는 성령의 역사 앞에 말씀을 사랑하는 한국인들은 물론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들마저 압도당하고 말았다. 1차각성운동 때 미국인들을 사로잡아 각성과 회개와 개혁을 태동시켜 미국을 명실공히 기독교 국가로 세우신 그 성령 하나님이 은둔의 나라 한국을 복음화하시기 위해 말씀을 사랑하는 한국인들을 감동하신 것이다.

부흥운동의 영향으로 1905년부터 1907년까지 한국교회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1905년 321개였던 교회가 642개로, 9,761명의 세례교인이 18,964명으로, 30,136명의 학습교인인이 99,300명으로 증가했고, 헌금도 1,352,867원에서 5,319,785원으로 무려 4배나 증가했다.

평양대부흥운동은 한국선교의 틀을 마련하시기 위한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였다. 그리고 그 원동력은 1890년부터 장로교 선교사들이 채택하여 왔던 말씀 중심의 선교정책에 있었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1.08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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