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6년 01월 13일/ 모방 신부 입국  

한국 선교를 꿈꾸며 입국을 시도하던 태국 주재 부루기에레(Bruguier) 주교가 한국 입국 전 1835년 10월 7일 남만주 별렬구에서 뇌일혈로 객사하자, 그가 못 다 이룬 한국선교를 완수하기 위해 피에르 모방 신부는 1836년 1월 13일 의주에 잠입했다.

중국 사천성에 부임하기로 내정되어 있던 모방이 한국 선교로 방향을 수정한 것은 부임 선상에서 부루기에레 주교를 만나면서였다. 함께 동역하기로 한 부루기에레 주교가 예기치 않게 객사하자 모방은 그의 장례를 치른 후 한국 사람과 함께 상복을 입고 방갓을 쓰고 헌종 2년 1836년 정월 12일 밤 의주 성벽 하수구를 통해 입국하는 데 성공했다.

같은 달 25일 서울에 도착한 모방 신부는 전도에 힘쓰는 한편 최양업, 최방지거, 김대건에게 라틴어를 가르치고, 사천성에서 활동하던 앵베르(Imbert) 주교가 부루기에레 주교 후임으로 한국에 입국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의 노력에 의해 한국의 천주교 신자는 엄청나게 불어나 곧 10,000명을 육박했다. 모방과 앵베르의 영향으로 정하상, 이문우, 이승훈의 아들 이신규와 최형 등 유능한 젊은이들이 신부를 자원하였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1.08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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