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명의 한국인이 능력의 전도자로 변화됨


존스의 말대로 자전의 노력은 한국인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처음부터 수용되었다. 그 결과, 게일이 지적한 것처럼 “처음부터 한국인들은 복음 전파와 교회 성장이 우리들[선교사들]의 사역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역이라고 믿었다.” 인들의 헌신적인 전도열을 옆에서 지켜본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하나같이 한국의 놀라운 복음 전파가 한국인들의 헌신적인 전도열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인들은 처음부터 말씀을 간절히 사모했고, 사경회는 그들의 필요를 정확하게 채워 주었다. 1908년 1월 청주에서 열린 한 사경회에 참석한 어느 한국인은 말씀에 “나는 주리고 있습니다. 너무도 주리고 있습니다! 나는 심오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너무 무지해 사경회 기간 동안에 채움을 받기 원합니다”며 말씀에 대한 사모함을 표현했다.
말씀과의 만남은 그들의 가치관을 완전히 변화시켜 주었다. 사경회에 참석한 이들은 말씀을 깊이 연구하는 동안 자신들의 공허한 가슴이 말씀을 통해 가득히 채워지는,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영적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후 그들의 심령에는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생겨났다.
사경회에서는 타의에 의해 끌려 온 이들도 말씀을 연구하는 동안 점점 더 복음에 눈이 뜨이면서 구령의 열정으로 불타기 시작했다. 사경회에는 말씀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었던 것이다. 참석한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 축복을 누렸다. 때문에 일단 사경회에 참석하면 “거의 모두가 다 끝날 때까지 머문다.” 모든 사경회에서는 저녁 전도 집회는 하이라이트였다. 사경회 참석자들은 오후에 각기 흩어져 전도하고, 자기가 전도한 이들과 함께 저녁 집회에 참석하였다. 이 전도 집회를 통해 인도자나 처음 참석한 사람이나 모두 은혜를 나누는 이와 같은 훈련을 통해 한 생명을 주께로 인도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것인가를 깨닫는다.

사경회에서 실시하는 복음 전도를 통해 실제적인 결실을 경험하면서 참석자들은 복음 전도를 당연한 의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경회가 끝난 후에도 그들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자신들의 삶 속에서 실천에 옮겼다. 따라서 사람을 접할 수 있는 공공 장소에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 사람들이 운집하는 시장 한 구석에서 사람들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청주를 선교 거점으로 삼고 있는 한 선교사는 시장이 열리는 장날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의 수를 어림잡기 위해 도시의 높은 언덕에 올라 사람들의 오고 가는 발걸음을 바라보았다. “일단의 그리스도인들이” 시장의 한 곳에 자리잡고 그곳에 모인 군중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의 고백대로 “그것은 소설 같은 경험”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믿는 사람들은 씨를 뿌리면 반드시 거둘 날이 있을 것으로 믿고 기회가 닿는 대로 열심히 복음의 씨를 심었다. 전환기의 한국에서 게일은 이렇게 말했다:“말씀을 듣고 전도지를 받은 사람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씨는 땅에 뿌려졌고 거둘 때가 있을 것이다. 충청북도와 남도 전역으로부터 매 5일마다 장을 보기 위해 여기 오는 군중들 가운데 이와 같이 끊임없이 씨를 뿌린다면 장차 커다란 수확을 거둘 것이다.”
처음부터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가 받은 그 아름다운 구원의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한다는 것을 의미하였고, 따라서 복음을 전해 받은 한국인들도 처음부터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제임스 게일의 말대로, “한국인들은 성경을 암송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천에 옮겼던 것이다.”
사도행전과 초대교회 역사가 보여 주는 것처럼 복음이 갖고 있는 특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특성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속성이다. 복음을 접한 이들은 구령의 열정으로 불타올라 자신이 만나고 경험한 그 주님을 가족과 친구와 이웃에게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법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어둠의 자녀에서 빛의 자녀로 바뀌었다는 의미이며, 이것은 단순히 신분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죄악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 받고 변화를 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의 심령에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넘쳐났다. 부흥운동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존 무어는 1907년 8월 코리아 미션 필드에 이렇게 말했다:

십자가와 보혈과 부활의 옛 복음이 이제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유롭고 충만하고 완벽한 구원을 가져다주었고, 문자적으로 게으르고, 둔하고, 목적 없는 수백 명의 한국인들을 사로잡아 그들을 놀라운 능력의 전도자로 변화시켜 주었다.

미국의 제 1차 대각성운동과 제 2차 대각성운동, 그리고 무디 부흥운동이 국내외의 선교열을 고취시켜 주었던 것처럼, 평양대부흥운동도 한국 교회에 선교의 비전을 심어 주어 내지 선교회(Home Mission Society)의 활동과 해외 선교활동을 한층 강화시켜 주었다. 이 같은 분위기는 1907년에 설립된 한국 장로교회를 처음부터 선교하는 교회로 정착시켜 주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후 수많은 이들이 해외나 복음이 닿지 않은 오지로 복음을 들고 나갔다.


대부흥운동 기간 동안 구령의 열정에 사로잡힌 이들 가운데는 복음을 들고 전국을 누빈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길선주는 1907년 장대현교회에서 부흥운동의 도구로 쓰임 받은 후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전국 어디에나 다 다녔다. 확실히 길선주는 그의 일생이 복음의 열정으로 불타 올랐던 전형적인 한국 교회 지도자였다. 그러나 복음의 열정이 길선주만의 독점물은 아니었다. 그것은 당시 은혜를 체험한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현상이었다. 또한 그것은 오랜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이 복음의 능력을 접하고 나서 나타나는 현상만이 아니라 복음을 접한 사람들이라면 신앙의 연륜과 상관없이 찾아오는 주님의 선물이었다.

바울 사도가 로마서에서 “복음의 빚진 자의 사명”이라고 정의했던 바, 바로 그와 같은 영적인 부담감은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특별히 은혜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찾아왔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고,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주시는 일종의 은혜였다. 오순절 성령 충만을 받은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때 그곳에 모인 이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특별히 사경회에 참석했다가 은혜를 받은 이들은 자신들만 복음의 특권을 누리는 것에 대해 너무도 안타깝게 생각했다.

-박용규, 평양대부흥운동 중에서 -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1.21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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