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02월 02일/죠션그리스도인회보


1897년 2월 2일 죠션그리스도인회보가 아펜젤러(H. G. Appenzeller)에 의해 창간되었다. 주간으로 발행된 이 신문 1면에는 오늘날의 사설과 같은 총설을, 2면에는 정치면에 해당하는 내보와 일반소식 및 광고를 실었다. 1900년부터는 지면을 6면으로 증면하여 1면에 총설, 2면과 3면에 교회소식, 신구약성경공부, 4면에 상식, 5면에 법령 및 정계의 움직임, 그리고 6면에 교회청년회란을 실었다.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았던 그 당시 매주일 신문이 발행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신문은 몇 가지 면에 한국교회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첫째, 이 신문은 최초의 감리교 교단지이자 한국 기독교신문의 효시였다. 둘째, 감리교도들뿐만 아니라 전체 한국 기독교인을 독자로 삼았다는 점이다. 1905년 7월 1일부터는 죠션그스도인회보가 장로교의 그리스도신문과 합하여 그리스도신문으로 발행되면서 명실상부 한국기독교를 대변하는 기독교신문이 되었다. 셋째, 국민계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창간호 사설에서 밝힌대로 이 신문은 "세계상에 유익한 소문과 각국에 재미있는 사적을"을 충실히 전달했고, 독자로 하여금 "지식과 학문을" 넓혀주었다. 시대에 부합하기 위해 대한제국이 성립한 후에는 신문 명칭도 "죠선그리스도인회보"에서 "대한 그리스도인회보"로 바꾸었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1.2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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