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02월 09일/침례교재건


거의 모든 개신교단이 그렇듯이 한국의 침례교회도 두 가지 면에서 유사한 경험을 했다. 하나는 선교초기의 놀라운 성장이고, 다른 하나는 일제 말의 탄압이다.

19세기 말 독립선교사 펜윅에 의해 설립된 침례교 전신 동아기독교는 헌신적인 국내 자비량 개척 선교자들의 공로로 1940년에 이르러서는 국내 100여 교회, 만주와 간도지역에 100여 교회, 시베리아 지역에 40여 교회, 그리고 몽고에 수 개의 예배처소를 마련하는 등 놀라운 선교열매를 거두었다.

그러나 곧 말로 다 할 수 없는 박해와 핍박이 뒤따랐다. 신사참배와 황궁요배를 반대하자 일제는 32명의 교단 지도자들을 보안법 위반으로 투옥시키고, 1944년에는 강제적으로 교단마저 해체시키고 교회건물을 철폐하였다. 뿐만 아니라 압류한 재산을 국방헌금이라는 명목으로 강제적으로 국고에 귀속시켰다.

이런 아픔 속에서도 남한의 동아기독교 지도자들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2월 9일 교단을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 그해 장로교회의 모델을 따라 교단을 총회체제로 전환하고 총회장,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제도를 채택하였다.

1949년, 동아기독교는 대한기독교침례회로 개명하고 미국의 남침례회 총회와 제휴를 모색하였다. 그리고 1950년 최초의 남침례회 선교사 에버내티(J.A. Abernathy) 목사 내외가 한국에 입국했다. 이로서 한국 침례교회는 세계침례교단과 교류를 맺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1.2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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