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02월 15일/신간회 창립


1927년 2월 15일 종로 YMCA 대강당에서 항일민족 운동단체인 신간회가 창립되었다.

신간회는 두 가지 면에서 항일운동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첫째, 신간회는 1920년대 기존의 여러 항일민족운동 단체를 규합하여 민족협동전선을 통한 민족적 비타협주의 단일당을 구현하였다. 1920년대 초 국내에는 항일운동의 방법과 사상면의 차이로 무려 2000여 개의 항일단체가 난립하였다. 민족주의 우파가 주도한 연구회, 민족주의 좌파가 주도한 조선사정연구회, 그리고 사회.공산주의 계열이 주도한 정우회가 사상과 전략상의 차이로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다. 이 세 개의 단체들이 이념과 사상을 넘어 공동의 목적인 항일투쟁과 독립쟁취라는 면에서 거족적인 민족 협동전선을 구축한 것이 바로 신간회였다.

둘째, 신간회는 3.1운동 이후 최대의 민족대표자 모임이었다. 자매단체로 근우회, 애국부인회가 조직되었고, 동경지회와 서울지회가 조직되면서 신간회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1931년에 지방지회가 141개소, 여기에 가입한 회원수만도 무려 39,410명이었다.

신간회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의 수정에서부터 농민의 생존권 보장, 노동자 이익에 대한 대개혁, 교육제도 개선, 여권신장 그리고 하층계급의 신분보장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개혁을 요구하였다. 비록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또 창립된 지 불과 4년만인 1931년 5월 강제해산되기는 했지만, 신간회는 일제에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박용규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1.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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