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를 팔아 교회를 건축: 자립과 자전의 한 사례


한국의 북부 지방에 교회 다닌 지 10년이 지난 한 건장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길선주처럼 과거에 그도 예수 믿기 전에 진리를 찾아 간절히 헤맸던 구도자였다. 구도자가 흔히 그렇듯이 그 역시 상당히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자신의 이상으로 삼았다. 홀로 산속에 들어가 은둔의 삶을 살면서 동료들과의 교제도 끊고 먹는 것도 절제하고 입는 옷도 절제하면서 겨울에는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추위와 고투하면서 수도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는 시간 나는 대로 고전을 읽으면서 철저하게 자신을 복종시켰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비록 외형적으로는 자신의 소원을 이룬 것처럼 보였지만 내면 깊숙이 자리잡은 약하고 변화되지 않고 고쳐지지 않은 약점 때문에 그는 괴로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적인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 채워지지 않았다.
여기에 한계를 느낀 이 젊은이는 군에 입대했다. 그가 구원의 진리를 발견한 것은 군대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일단 교회생활을 시작하자 그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군보직에 재직하고 있는 동안 교회에 전념하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는 좀더 신앙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과감하게 군보직을 사임하고 자기의 고향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농부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농사를 짓는 것 외에 “마을 집집마다 다니면서 복된 구원의 소식을 전해 주었고, 그리스도를 찾도록 그들을 권유”하는 것이 그의 주요 일과가 되었다.
자기 고향 마을에 믿는 자들이 점차 증가하자 그는 교회당을 세울 필요를 느끼고 이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마을 사람들도 그의 열심과 헌신에 감동되어 온갖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교회의 공사
#농사에 필수적인 황소가 밭가는 모습 (평양신학교의 상급생들)
진척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워낙 농촌 교회인데다 자금이 부족한 가운데 건축을 시작해 건축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지붕을 올리기 위해 서까래를 얹을 즈음 비축해둔 건축 자금이 완전히 바닥나고 말았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이라곤 기도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 문제를 놓고 열심히 기도했다. 많은 계획들이 논의되었으나 항상 결론은 다시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기도를 해왔지만 특별한 대안이 생기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기도하자는 말에 교인들은 “우리가 기도를 해왔지만 결과는 돈 한 푼이 생기지 않지 않습니까?”라고 자포자기하는 듯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기도하는 가운데 이 젊은이의 내면에서는 남아 있는 유일한 재산을 바쳐서라도 교회 건축을 완성해야 한다는 감동이 강하게 일어났다. 그는 다음날 아침 사람들을 모아 놓고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한 후 이렇게 자신의 결심을 털어놨다:

지금 내게는 강하고 훌륭한 짐승, 즉 매우 값나가는 황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 농장에서 일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고 그것이 없어지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은 완성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완성하는 데 나의 황소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팔아 건물을 완성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하겠습니다. 농토에 대해서는 우리의 농경지를 돌보실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사실 농사를 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황소를 교회 건축을 위해 바친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동네에 한 마리밖에 없는 황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그곳에 모인 농사꾼들에게 그것은 대단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그 젊은이의 그와 같은 결단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약속을 지키는 신실한 사람이어서 즉시 자신의 황소를 팔았다.”
“교회는 완성되어 하나님의 집으로 사용되도록 봉헌되었다.” 그로부터 몇 주 후에 이 마을을 방문하기 위해 그 마을 들을 지나가던 한 선교사는 쉽게 보기 힘든 인상적인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 한국인 그리스도인과 그의 형제가 이미 판 황소 대신 나란히 쟁기를 끌고 늙은 아버지는 쟁기를 잡고 밭이랑을 갈고 있었다.” 자기의 시간을 아끼지 않고 전도하여 사람들을 모은 후에는 애써 모은 전 재산을 희생하면서 교회를 건립하고는 다시 그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일들은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얼마 후 그 청년은 22개 마을을 책임맡은 충실한 목회자가 되었다.

-박용규-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1.2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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