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오순절, 그 첫째 날


1907년 1월 14일, 월요일 정오기도회에서 선교사들은 영적 위기의식을 갖고 하나님께 성령의 역사가 임하도록 더욱 간절히 간구했다. 이들이 얼마나 놀라운 성령의 강림을 간절히 고대했는지, 그들의 심정은 마치 야곱이 얍복강 나루에서 축복하시지 않고는 그냥 보낼 수 없다며 날이 새도록 하나님의 사자와 겨루었던 그날의 야곱의 심정과 같았다. 전날과는 달리 그날 사경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교회 안에 들어올 때“하나님의 임재로 가득 찬 것을 느꼈다.”바로 그날이 白樂濬 박사가 그의 한국개신교 사(韓國改新敎史)에서 “어느 날 저녁집회 때에 부흥 기운이 터져 나왔다”고 말한 바로 그날이었다. 바로 그날, 저녁집회 때 윌리엄 헌트(William Hunt)의 설교가 있은 후 그레이험 리(Graham Lee)가 모인 회중들에게 통성기도를 요청하자 그들 가운데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그가 모두 힘을 다해 성령의 놀라운 임재를 사모하며 통성으로 기도할 것을 제의하자 거기에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 개개인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그 놀라운 영적 각성의 현장을 목격한 블레어 선교사는 이렇게 증언한다:


간단한 설교가 끝나고 그레이험 리 선교사가 사회하면서 회중에게 기도하자고 선포하였더니 여러 사람들이 기도를 시작하므로 그레이험 리가 “여러분이 다 이와 같이 기도하기를 원하면 다 같이 기도합시다”라고 말하자 온 회중이 일제히 큰소리 내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정황은 실로 글로 적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아무런 혼란도 없었고 도리어 심령과 심령이 호응하는 화음이 서리었고 기도를 올리고 싶은 충격을 억제할 수 없던 마음과 마음이 사귀는 마음의 교통이었다. 기도 소리는 마치 폭포수 소리와 같아서 기도의 대해호(大海湖)가 하나님의 보좌로 밀어 올라가는 듯했다.

 사도행전의 오순절 역사처럼 기도 가운데 성령께서 강하게 임하신 것이다. 조지 매큔의 말대로 이날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을 간구”했고, 블레어가 훗날 골드 인 코리아(Gold in Korea)에서 증언한 대로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했던” 사도행전의 오순절 역사가 재현된 것이다.

길선주 목사 가족사진


그날 저녁 집회 도중 저 건너 한쪽에서 어떤 사람이 흐느끼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모든 회중은 약속이나 한 듯 울음을 터트렸다. 그날 밤 그곳에 참석한 이들은 주변을 의식할 겨를도 없이 강한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 앞에 하나같이 굴복하고 말았다. 그날 성령의 역사는 강력한 회개와 함께 임했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일어나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고꾸라져 울었다. 그러고 나서 바닥에 엎드려 죄인이라는 완전한 고통 속에서 주먹으로 바닥을 쳤다. 나의 요리사는 회개를 하려고 애쓰며 그 가운데 거꾸러져 방 건너 쪽에 있는 나에게 소리쳤다. “목사님, 나에게도 희망이 있는지, 용서받을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바닥에 엎드려 울고 또 울며 거의 고통 중에 부르짖었다. 때때로 회개의 고백 후에 모든 회중이 통성기도를 했다. 수백 명의 회중이 통성기도를 한 효과는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시 회개의 고백 후에 그들은 참을 수 없는 울음을 터트렸고 우리 모두 함께 울었다.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모임은 기도와 고백과 눈물로 새벽 2시까지 계속되었다.


회개와 간증이 지속되면서 저녁 8시에 시작한 그날의 모임은 새벽 2시까지 무려 6시간이나 계속되었다. 어떤 보고에 의하면 이 역사적 모임은 “저녁 여덟 시부터 이튿날 새벽 다섯 시까지 이러한 상태는 계속되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목도한 선교사들은 한국인들의 회개와 통회의 현장을 목도하고는 이들의 “참회의 고통에 동정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선교사들 역시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용서받아야 할 똑같은 죄인이었다.


이날 북평양교회에서 블레어 선교사를 도왔던 강유문이 일어나더니 그곳에 모인 회중 앞에서 블레어 선교사가 책임자로 있는 청년 단체의 임원이자 장대현교회 장로인 김 장로를 미워했다는 고백을 했다. 하지만 월요일 저녁 김 장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분명, 이날의 성령의 역사에는 모종의 특징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중 한 가지는 여기에 모인 선교사들과 한국인들이 한결같이 자신들의 죄를 공중 앞에서 숨김없이 털어놓았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의 감동에 따른 통성 기도였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회개를 동반하는 기도였고,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지배를 갈구하는 간절한 신앙의 염원이었다. 매큔이 지적한 대로 “거기에는 센세이션이 없었으며, 종종 사용하는 ‘감정’도 없었고, 서로 자신의 기도에 완전히 집중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그 이후 이어진 낮과 저녁에 위대한 축복이 우리를 위해 예비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역사의 초석은 말씀연구와 기도 두 가지를 끊임없이 강조해 온 사경회에 있었다. 1903년 원산부흥운동도 1주간 열린 일종의 사경회 형식의 기도회에서 발흥하더니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 역시 사경회 기간에 발흥한 것이다. 네비우스 선교 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사경회운동에서 말씀을 배우고 깨닫자 말씀 앞에 자신들의 죄악들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구태여 로이 스위러(Roy E. Shearer)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평양대부흥운동의 실질적인 토대는 사경회 제도에 있었으며, 사경회가 부흥운동의 수단(vehicle)이었다. 1890년부터 네비우스 선교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된 사경회운동으로 영적 각성의 분위기가 전국적으로 보편화된 데다 1906년 신약성경의 완간으로 인한 활발한 성경보급은 기왕의 형성된 한국교회의 영적 분위기와 복음의 열정을 한층 고조시켜주었다. 무스(R. Moose)가 지적한 것처럼, 적어도 상당부분 “이러한 국민의 전반적인 대각성은 전적으로 전도와 성경보급에서 얻은 결과”와 무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1월 14일 월요일 저녁집회에 얼마나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임했는가는 그 현장에 있던 그레이험 리 선교사의 보고를 통해 알 수 있다. 놀라운 성령의 임재가 나타난 그 이튿날, 1월 15일자 북장로교 선교본부 총무 브라운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레이험 리 선교사는 어제 있었던 성령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그가 경험하고 모든 이들이 공유한 “성령의 특별한 임재”를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던지 그레이험 리는 지금 열리고 있는 사경회가 평양선교부 사상 가장 훌륭한 사경회라며 이렇게 끝을 맺었다:


어떤 말로도 [어제 있었던] 그 집회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제까지 결코 목도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영의 현시였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며, 이제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서도 하나님께서 이들을 도우시고 각자의 교회에서 그들을 놀랍게 사용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것은 내가 이제까지 결코 목도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영의 현시”였다는 그레이험 리의 보고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그 현장에 그레이험 리와 함께 참여했던 조지 매큔(George McCune)도 1월 15일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 총무 브라운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존경하는 브라운 박사님.

당신은 지금 우리 가운데 임재하고 있는 축복에 대해 의심할 바 없이 듣고 계실 것입니다만 나는 그밖에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들려주었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위험을 무릅쓰고 반복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시골 지역 출신 남자 성도들을 위해 겨울 사경회를 열고 있는 중이며,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열었던 것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며, 스왈른이 이전에 보고했던 재령 지역은 포함되지 않은 것입니다. 약 1,000명이 참석했는데, 모두 시골에서 올라온 자들이며, 평양 시내 남자들은 참석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교사진은 규모가 작습니다. 리(Lee), 스왈른(Swallen), 번하이셀(Bernheisel), 헌트(Hunt), 그리고 블레어(Blair)가 몇 명의 한국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전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우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권능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장대현교회에서 모인 지난 밤 집회는 최초의 실제적인 성령의 권능과 임재의 현시였습니다. 우리 중 아무도 지금까지 이전에 그 같은 것을 경험하지 못했으며, 우리가 웨일즈, 인도 등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에 대해 읽었지만, 이번 장대현교회의 성령의 역사는 우리가 지금까지 읽었던 그 어떤 것도 능가할 것입니다.

저녁집회 동안에 우리는 성령을 위해 간구하고 있었고, 우리는 명백한 방식으로 성령께서 이번에 자신을 현시하셔서, 이번 집회 중 어느 때에 전 청중이 일치하여 성령을 사모하며 부르짖기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전혀 혼란이 없이 완벽히 조화를 이루며 1,000명 이상이 일시에 기도하는 것을 듣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당신이 오후 혹은 초저녁에 거리를 지나간다면, 성령을 간절히 간구하는 가정에서 드리는 기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령을 갈급하여 찾고 있습니다.

우리 선교사들은 평양에서 열린 8월의 사경회에서 성령의 능력을 간구하기 시작했으며, 이번 겨울 남자 사경회 때에 분명하게 성령이 임할 수 있도록 이를 위해 크리스마스가 지난, 다음날 시작하여 한 주간 동안 매일 저녁 특별집회를 가졌고, 그 후 지금까지 정오에 우리가 모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서로 죄를 고백하면서 집회를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비록 우리 공동체가 거의 완벽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바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고백할 무엇인가를 발견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며칠 전에 받았고, 또 지난 밤 한국인들 가운데서 그 권능을 목격하였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놀라워 지금 내가 그것을 말하기 시작하면서도 눈물이 너무 나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겠습니다. 말로는 어떻게 그것을 [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어제 저녁집회는 저녁 7시에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밤 집회는 새벽 2시에야 끝났습니다. 하나 둘씩 일어나 자신들의 죄-그들 중 많은 사람이 악과 싸우며 대단히 고통스러워하면서-를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그 싸움이 계속되는 것을 보았지만, 결국 승리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공포스러움”이 우리가 어제 밤 하나님과 사단 사이의 투쟁을 목격하면서 체험했던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입니다. 몇 사람은 믿기 전에 자기 친구를 살해했음을 고백했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모조리 범했음을 고백했으며, 교회 직원들이 도둑질했음을 고백했고, 그들 가운데 있었던 질투와 미움도 고백 했습니다. ……우리는 요즈음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대단한 즐거움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상당수가 교회의 지도자들인 이들 1,000명이 집으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이 임하겠는가요! 그것은 측량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러한 임재 앞에 매우 겸비하며, 몇몇은 그들이 허풍을 떠는 것처럼 보일까봐 성령의 역사를 기술하는 것을 겁내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로부터 모든 영광을 받으셨다고 확신합니다. …···

조지 매큔


우리는 매큔의 편지를 통해 적어도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이번 평안남도 도 사경회에 참석한 선교사 리(Graham Lee), 스왈른(William L. Swallen), 번하이셀(Charles F. Bernheisel), 헌트(William B. Hunt), 그리고 블레어(William Newton Blair) 모두 신학적으로는 구학파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부흥운동에 대해 긍정적이었던 시카고에 위치한 맥코믹신학교 출신 북장로교 선교사들이었다는 사실과 1월 14일, 한국의 오순절 그 첫째 날의 성령의 강한 역사가 자신들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매우 강하고 놀라운 역사였다는 사실이다.


이날 임한 성령의 역사의 강도가 얼마나 강했는가는 매큔의 위의 보고 내용 중 “매우 놀라운 은혜”, “최초의 실제적인 성령의 권능과 임재의 현시”, “우리 중 아무도 지금까지 이전에 그 같은 것을 경험하지 못했으며, 우리가 웨일즈, 인도 등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에 대해 읽었지만, 이번 장대현교회의 성령의 역사는 우리가 지금까지 읽었던 그 어떤 것도 능가할 것입니다”에서 읽을 수 있다.


이와 같은 그레이험 리와 조지 매큔의 증언은 1월 16일자 서신에서 밝힌 의료 선교사 웰스(J. H. Wells)의 증언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에 익숙한 의사의 관점에서도 월요일 밤 “우리 가운데 임한 놀라운 성령의 현시는 가장 특기할 만하고 흥미롭고, 그러면서도 가장 영구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사건이었다.” 확실히 매큔이 생생하게 증언한 대로, 또 앞서 그레이험 리가 브라운에게 보고한 대로, 그리고 웰스가 재확인한 대로 그날의 죄의 고백은 인위적인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에 의한 믿음의 고백이었으며, 그것은 한국 “교회를 정화시키시고 더 크게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의 섭리였다.

 

불행하게도 한국교회에 임한 이와 같은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목도한 선교사들은 많지 않았다. 블레어가 지적한 대로 “단지 몇몇 선교사들만 그 월요일 밤 집회에 참석했었다.” 14일 저녁에 그 같은 것을 경험한 선교사들은 그 다음날 15일 화요일 아침 그 놀라운 소식을 다른 동료 선교사들에게 알리기에 분주했다. 15일 아침, 그레이험 리 선교사는 블레어 선교사와 함께 전날 밤의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참석하지 않은 동료 선교사들에게 전하기 위해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녔다.


곧 그 소식을 접한 장감 선교사들은 그날 정오 한자리에 모여 그날 저녁 화요집회에도 그 같은 성령의 역사가 계속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이날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선교사들 가운데 임했다. 평양주재 의료 선교사 웰스는 바로 그날 코리아 미션 필드에 보낸 편지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이렇게 기록하였다. “우리의 전 공동체와 한국교회 특별히 지난밤과 오늘 지금까지 우리 모두의 생애 동안 우리 대부분이 감지하지 못하고 목도하지 못했던 그와 같은 성령의 현시를 경험했다. 그것은 놀라웠고 참석한 모든 선교사들이 놀라운 축복을 받았다.


우리는 성령의 현시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길 기도한다.” 그날 저녁집회에도 전날의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모인 것인데 평양 장대현교회에 임했던 월요일 밤의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화요일에도 그들 가운데 그대로 임했던 것이다. 웰스는 그 다음날 1월 16일, 브라운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어제 외국인 학교 작은 건물에서 모인 정오기도회 때 똑같은 일이 우리 가운데 임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권능을 위해 기도하면서 거의 한 달 동안 매일 이 모임을 가져 왔는데, 우리의 기도가 놀랍게 응답되었습니다. 나는 결코 어제와 같은 모임을 경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저 한국인들 가운데 임한 성령의 임재하심을 감사하기 위해 모였을 뿐인데, 그가 친히 또한 우리와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그곳의 모든 사람(선교사들)이 울부짖었으며, 죄에 대한 고백과 슬픔이 거의 모든 각 개인의 입술에 임했습니다. 우리는 단지 몇 분간을 위해 모였는데 어제는 거의 두 시간이나 우리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단지 놀라운 분출만이 아니라 변치 않는 참되고 신실한 성령의 현시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성령과 교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책임 있는 사역에 대해 지금까지보다 더 차원 높고 더 적합한 계획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한국인들에게만 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선교사들에게도 똑같이 임했던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한국교회를 정화시키시며 선교사들에게 이 민족의 복음화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동참하도록 촉구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분명 이것은 그 동안 그들이 기도해 오던 바로 그 기도제목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사경회 마지막 밤 화요일 저녁집회가 시작되었다.

 

                    박용규,평양대부흥운동(서울:생명의말씀사,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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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07.0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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