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03월 10일/도산 안창호와 기독교 민족주의

 

일본의 황국신민화 정책과 신사참배 강요가 한창 절정에 달하던 1938년 3월 10일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이자 한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기독교 민족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인 도산 안창호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오랫동안 서대문 감옥에서 복역하다 병보석으로 풀려 나온 후 그 후유증으로 순국했다.

도산은 19살이던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한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생동안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조국의 주권 회복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는 점에서 한국 기독교 민족사에 뚜렷한 이정표를 제공했다. 도산은 화란의 아브라함 카이퍼와 같이 하나님의 주권이 교회와 사회 및 정치 모든 영역에 확대되어야 한다는 기독교 민족주의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 같은 기독교 민족주의 정신은 1894년 상경하여 언더우드 선교사가 운영하던 서부 대정동 소재 구세학당에 입학하고 기독교에 입교하면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그후 그의 생은 조국과 하나님을 위한 생이었다.

신민회, 대성학교, 태극서관, 청년학우회, 흥사단, 그리고 한국독립당의 결성에 이르기까지 도산이 주도하지 않은 것이 없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3.0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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