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9년 03월 15일/한국의 무디, 영계 길선주

 

1869년 3월 15일 브라운(A.J. Brown) 선교사가 "지금까지 교회가 배출한 가장 뛰어난 설교자이며 복음전도자"라고 평했던 영계 길선주 목사가 태어났다. 그는 최초의 7인의 장로교 목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33명의 한 사람이자 3.1 운동의 주역이었으며, 보수주의 신학의 대변자였다.

또한 영계는 1905년의 영국의 웨일즈 부흥운동과 1906년의 원산부흥운동의 영향으로 1907년 1월 6일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평양대부흥운동의 주역이었다. 1740년대 발흥한 미국 1차 대각성운동과 같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성령의 강력한 역사에 의해 태동된 평양각성운동은 곧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1907년 3만 7천여 명이던 교세가 1911년에는 무려 14만 4천 명으로 4배나 증가하였다. 이와 같은 놀라운 한국교회 성장은 기도와 말씀의 지도자 영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28세 되던 1896년 가을, 바울, 어거스틴, 요한 웨슬리의 신앙체험과 비견할 수 있는 영적체험을 경험한 영계는 1903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해 기도와 말씀 연구에 전념하다 1905년에는 동료 박치록 장로와 함께 새벽기도회를 시작했고, 1907년에는 평양부흥운동을 통해 잠자는 한국교회를 깨웠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3.0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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