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으로 확산되는 평양대부흥운동

 장대현교회에서의 집회가 끝이 나고 참석자들은 대단한 기쁨으로 충만했으며, 그 후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다른 지역에서 계속되었다. 평양 장대현교회 사경회에서 놀라운 성령의 권능을 친히 목격한 그레이험 리 선교사와 블레어 선교사가 시골에 내려가 인도한“그 사경회에서도 정확히 똑같은 현상, 곧 죄로 인한 무시무시한 탄식과 참회 후의 놀라운 기쁨과 평화가 찾아오는 성령의 임재하심이 있었다.”

그리하여 평양에서 있었던 놀라운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한 달도 되지 않아 서울로, 선천으로, 청주로, 광주로, 대구로, 그리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다. 밀러(F. Miller)는 청주에서 영적각성운동이 일어났음을 알려 왔고, 광주 주재 놀란(J. W. Nolan) 선교사도 방금 2주간의 사경회가 끝나고“성령이 여기에 권능 가운데서 놀랍게 죄를 확신시키시고 고백하게 하셨다”고 긴급 타전했다. 서울에서 열린 장로교 신년 사경회에 참석한 모든 지도자들과 사역자들은 예외 없이“전혀 의심할 수 없을 만큼” 죄를 고백하고 성령의 은혜를 경험했으며, 선천에서도“그의 교회에 임했던 놀라운 성령의 강림이”그대로 재연되었다.


평양 장대현교회의 부흥운동의 역사가 일어난 지 한 달 후 코리아 미션 필드 2월호에는 1월호에 실렸던 제호“평양에서의 성령”대신“한국에서의 성령”이라는 특집 기사가 실렸다. 1월의 장대현교회와 평양 지역에 이어 “이번 2월에 성령은 큰 권능으로 모든 지역의 많은 도시들과 마을을 찾아가시기 위해 임하신 것이다.”성령의 역사는 앞으로 도래할 미래적인 “임하실” 일이 아니라 이미 전국에 도래하고 있는“임하시는” 현상이며, 이와 같은 그의 임재는 실로 강력하고 경이로운 것이었다.

 

사도행전이 보여 주는 것처럼, 오순절의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한 이들에 의해 오순절의 역사는 더욱더 넓게 확산되어 나갔다. 블레어가 말한 것처럼“그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마다 성령의 불꽃은 동일하게 퍼져 나갔다. 실제로 한국 북부지역뿐만 아니라 반도 전체의 모든 교회가 이 복을 나누어 받았다.”1907년 1월 14, 15일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발원한“부흥운동은 1월부터 6월까지 계속되었고, 평양 시내 교회를 새롭게 만든 후 시골과 멀리 남부까지, 그래서 한반도 전역의 모든 선교부들이 부흥운동의 영향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확산되었다.”


이와 같은 부흥운동의 저변확대는 다양한 수단으로 이루어졌지만 주로 1907년 1월 장대현교회 사경회 이후 평양에서 계속된  부흥운동을 직접 체험한 이들이 전국으로 흩어져 부흥운동을 전개하면서 확산되었다. 특히 장대현교회 사경회 때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직접 확인한 선교사들과 길 장로는 이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하나님의 성령은 놀라운 방법으로 자신을 현현하시고 교회의 권능, 새로운 기쁨을 가져다 주셨다. [그레이험] 리는 선천으로, 헌트는 대구로, 소안론은 광주로, 길 장로는 의주와 서울로 달려갔다. 성령의 임재는 교회에서 교회로, 한 선교부에서 다른 선교부로 확산되어 마침내 온 나라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성령의 놀라운 현현을 목격했다.


이 중에서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성령의 불씨를 평양에서 전국으로 가지고 간 주역은 바로 길선주 장로였다. 의심할 바 없이 그는 평양대부흥운동이 전국적인 현상으로 발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를 통해“신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부흥의 체험이 반복되었다.”알렌(Horace N. Allen)이 길선주를 부흥운동의 기폭제로 이해할 만큼 길선주는 1907년 대부흥운동의 저변 확대에 지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박용규,평양대부흥운동(서울:생명의말씀사,2007) 


  • 기자명 관리자
  • 입력 2006.07.10 15:48
  • 댓글 0
저작권자 © 평양대부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