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9.22 화 08:23
 
> 뉴스 > 국내부흥운동 > 평양대부흥운동
     
부흥운동기간 남감리교가 가장 급성장
2008년 03월 17일 (월) 10:57:52 평양대부흥

 

부흥운동기간 남감리교가 가장 급성장

   
                                                 제 1회 남감리회 매년회
 
부흥운동 기간 동안 가장 놀라운 신장률을 기록한 것은 남감리교이다. 남감리교는 한국 선교를 가장 늦게 시작했으면서도 부흥운동 기간 동안 가장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룩하였다. 1903년 원산부흥운동 이후 원산과 개성을 중심으로 수적인 성장을 이룩해 온 남감리교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기간 동안에도 부흥운동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교세가 급신장하였다. 원산부흥운동의 주역 하디와 그 뒤를 이은 저딘, 그리고 평양부흥운동 기간 동안 눈에 띄게 활동했던 크램, 그리고 1909년 백만인 구령운동의 불씨를 제공한 스톡스 모두 남감리교 출신이었다.

그 결과 남감리교는 1903년부터 1907년까지 부흥운동을 거치면서 타 선교회보다도 놀라운 신장률을 기록했다. 그 단적인 예가 개성이다. “한국 선교가 시작되고 거의 15년 동안 복음이 닿지 않았던 미개척지 개성이 뒤늦게 선교가 시작되고 불과 10년 만에 한국에서 가장 활발한 선교 구역 가운데 하나로 성장한 것이다. 선교가 시작된 이후 개성 선교부는 교세가 꾸준하게 늘어나 1908년 초에 이르러서는 매우 활발한 선교부가 되었다.” 부흥운동을 거치며 놀랍게 신장하면서 “남감리교 선교회는 강원도 수도인 춘천에 새로운 선교부(mission station)를 개설하기로 결정하였다.” 캐나다 장로교 선교회와 남감리교 선교회가 원산 지역에서 좀더 효율적인 선교를 위해 의견을 교환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1908년 2월 두 선교회는 원산에서 모여 원산 남부는 남감리교 선교회가, 그리고 함경남북도 원산의 북부 지역은 전적으로 캐나다 장로교 선교회가 맡아 선교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남감리교는 1906년과 1907년 사이 회계연도 9개월 동안 756명의 입교인과 1,331명의 학습교인이 증가해 입교인 1,973명, 학습교인 3,025명, 성인세례자 712명, 유아세례자 141명이 되었고, 외국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47개 교회가 지어졌다. 남감리교는 지난 1년 동안 이처럼 놀랍게 양적, 질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지난 9년 동안은 교회가 놀랍게 성장하면서 인력 및 경제적 자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따라서 여기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 선교지 현장에 있는 선교사들의 주된 요구 사항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다음과 같이 외쳤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의 구원을 위한 전에 없는 전략적 순간이다. 우리 주님의 능력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자. 모교회에 기도를 요청하자.”

- 박용규, 평양대부흥운동 중에서 -

평양대부흥의 다른기사 보기  
ⓒ 평양대부흥(http://www.1907reviva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오늘 : 1,398 / 전체 : 15,806,479
 

한국기독교사연구소 | 우) 121-884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376-32 | TEL 02)3141-1964 | FAX 02)3141-1984
Copyright by 한국기독교사연구소 기사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 문의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