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끌려간 전쟁포로들의 회심

임진왜란당시 전쟁 포로로 일본에 끌려간 사람이 적어도 5만 이상으로 추정되며,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세상을 떠난 후 조선과의 외교관계 회복의 일환으로 추진된 7천명 포로 귀환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본에 남아 있었는데, 이들 가운데 천주교로 귀화한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나가사키와 히라도(平戶), 큐우슈(九州) 지방에 있던 “'조선'(Corai)에서 온 포로들" 가운데 개종한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1595년 나가사키(長崎)에서 활동하던 프로에스 신부의 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 나가사키(長崎)에 사는 조선인 노예들은 남자, 여자 도합 3백 명이 넘는데 그 중 많은 이에게 금년에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2년 전에 영세하였고 거의 전부가 금년에 고해성사를 받았습니다. 경험에 의하여 우리는 조선 백성이 우리 거룩한 신덕을 받아들일 준비가 잘 되어 있음을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매우 친절하여 기쁜 마음으로 성세를 받고 자기들이 천주교인이 된 것을 기뻐합니다.

이처럼 일본기독교의 중심지 나가사키에 있는 다수의 조선인 노예들이 세례를 받았다. 포로로 잡혀간 이들 가운데 천주교로 개종한 이들이 무려 7,000여 명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되며, 그 중에는 강빈센트 같이 신학 훈련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1608년까지 조선인들이 일본에서 신부로 서품을 받았으며, 예수회는 그들의 고국 조선에 복음을 전하는데 그들을 이용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계획은 1614년에 시작된 대박해로 이들이 조선에 입국하기 전 순교함으로써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일본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다수의 조선인들이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신앙의 정절을 잃지 않고 일본에 있는 조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자신들의 생명을 바치기까지 충성을 다했다. 일본 관리들이 조선기독교인 특별히 여인들의 신앙의 절개를 증언하고 있으며, 일본에 포로로 잡혀간 이들 가운데 복자의 위를 받은 이들이 9명, 순교자 칭호를 받은 이가 11명에 이른다.


- 박용규, 한국기독교사연구소 1권 -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3.1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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