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03월 21일/매큔 강제 출국


1936년 3월 21일 한국교육에 지대한 공헌을 한 북장로교 매큔 선교사가 일본 정부의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신사참배를 하느니 차라리 교장직을 사임하겠다며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일본 정부로부터 교장직을 박탈당하고 한국을 떠났다.

그가 존경받는 것은 1905년 파송받아 신성중학교 교장, 평양숭실전문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30여년 이상 자신의 젊음과 정열을 낯선 이국 땅 한국의 교육에 헌신하며 이룩한 탁월한 업적 때문만이 아니라 뚜렷한 신앙관을 한국 교회에 남겨주었기 때문이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가며 회유하고 협박하면서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야스다께 평안지사 앞에 '신앙 양심상 도저히 신사에 참배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힌 매큔은 주종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한국을 떠난 후에도 그는 신사참배 문제를 미국 교계에 널리 알려 미국교회의 여론을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데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는 신사참배 문제로 고민하는 한국교계의 수많은 신앙인들과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살아 있는 신앙의 모델이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3.2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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