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03월 28일(음)/박형룡박사 출생


1897년 3월 28일(음)은 한국 보수주의의 큰 신학자 박형룡 박사의 출생일이다. 당시 서구에선 자유주의가 유럽 전역을 주도하고 있었고, 북미에서는 디 엘 무디의 부흥운동과 그 부흥운동의 힘을 업고 세계선교운동이 진행되고 있었고, 국내에서는 일본의 한국 침략이 노골적으로 표면화되던, 그야말로 세계가 전에 없는 변화를 맞고 있었던 시대다.

이런 세기말의 엄청난 변화 속에서도 한국교회는 성장의 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물론 선교사들이 있었지만, 그 선교사들의 사상을 한국교회의 신학과 교회 상장의 틀로 연결한 사람은 박형룡 박사였다. 선교사들의 신학사상을 계승하면서도 그것을 한국인의 심성과 언어로 정확히 표현해주었던 사실, 바로 이것이 그가 한국교회에 끼친 가장 큰 공헌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반복적 진술이 아니라 프린스톤의 보수주의 학풍을 우리의 언어와 생각으로 재진술한 작은 창조며 거보였다. 그와 견해를 달리하는 후대인들은 그를 가리켜 프린스톤의 신학을 그대로 반복한 학문성 없는 학자, 자신의 신학없이 서구의 신학을 그대로 옮겨논 학자, 교회 분열을 일삼은 근본주의자라고 매도하지만, 박형룡 박사 만큼 한국교회의 신학을 염려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에게 한국교회의 신학이란 복음의 핵심까지 변질시키는 민중신학, 성의 신학, 토착화신학이 아니라 전통적인 신학에 대한 한국적 표현이었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3.20 14:17
  • 수정 2020.12.1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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