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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흥을 경험하면서 폭발적 교육열의 증가
2008년 04월 14일 (월) 11:12:13 평양대부흥

 

대부흥을 경험하면서 학업에 대한 열망과 미션 스쿨의 증가

   
                                              대부흥 기간에 믿은 소녀들
 
부흥운동으로 직접 선교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것이 사실이었지만 그것이 간접 선교인 학교와 병원 사역을 평가 절하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부흥운동은 단순히 복음 전파뿐만 아니라 미션 스쿨과 병원의 설립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처음부터 교회가 어느 정도 자립할 경우 학교 설립을 권장해 온 전통에 따라 자립하는 교회가 늘어나면서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들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교육 분야에서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1903년 부흥운동이 일어나면서 보통학교에서부터 중학교, 대학교, 그리고 실업학교에 이르기까지 학교 설립에 대한 전반적인 필요성이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1903년 북감리교 보고서에서 노블은 “지난 한 해 동안에 8개의 사립학교가 새로 시작되었으며, 다른 학교들도 계획 중에 있다. 이 도시의 한 학교에는 83명의 학생이 등록하였다. 우리의 시설 확충이 시급하게 요청되고 있다”고 말했다. 해마다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학생들의 숫자도 놀랍게 증가할 것으로 예견되었다. 실제로 특히 1907년 부흥운동을 지나면서 학교 설립이 놀라운 속도로 늘어났다. 1907년 7월 25일 스왈른은 미 선교부 아더 브라운 총무에게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아래와 같이 보고하였다:

대단히 놀라운 수의 학교가 올해 설립되었습니다. 내가 맡은 선교구에서만 지난해 16개 학교가 시작되었으며, 전체의 반 이상을 내가 관할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적합한 교사들을 공급하는 문제는 시급한 사항입니다. 대학과 연계된 단기 정규 과정의 문제가 선교부에서 논의되었습니다. 가능한 한 교육은 한국인 교사들만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공을 거둘 수 있으려면 선교사의 감독이 요청되리라고 봅니다. 교육 전반의 문제가 너무도 긴박하여 가뜩이나 제한된 우리의 에너지의 너무 많은 부분을 교육에 소비해 현 사역의 국면에서 시급하게 돌봐야 할 정규 교회 사역이 소홀하게 되지 않을까 적지 않게 우려가 됩니다. 대학과 중학교, 그리고 정규 사역뿐만 아니라 신학교와 사경회 사역이 점점 더 많은 우리의 관심을 요하고 있습니다. 금년 가을 선교부가 한국으로부터 많은 지원 요청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학교 설립이 폭발적으로 급증한 것은 대부흥운동을 통해 당시 복음을 접한 이들이 계몽되기 시작하면서 학업에 대한 열망이 자연스럽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학교에 대한 부르짖음이 어느 곳에서나 들린다. 수만의 학생들이 배움을 기다리고 있다.” 선교회는 교회 설립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배움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을 동시에 선교회 전체의 중요한 사역으로 여겨 왔던 것이다. 이와 같은 선교회의 교육에 대한 지원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 1908년 연례모임에서 서울 지역을 담당했던 존스가 보고한 내용이다:

교육문제에 상당한 노력이 집중되었는데 교회는 이 지역에서 33개의 학교를 갖고 있다. 이들 학교들 가운데 21개 학교는 남학교로 전체 1,015명이 재학하고 있으며 12개는 여학교로 560명 학생이 재학하고 있어 이 한 지역에서만 총 1,575명의 학생들이 있다. 이들 학교들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한국인들이 남자 영어고등학교에 기초하여 배재학당을 다시 오픈하기 위해 진심어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특별히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아마도 이화학당은 이 나라 미션 스쿨 가운데 가장 좋은 시설을 갖춘 교육 기관일 것이다. 에드먼즈의 조심스럽고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매우 성공적인 지도로 간호 훈련원이 우리에게 한국 여성들을 위한 크고 중요한 사역의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을 비롯한 기존의 학교는 물론 새로 설립된 학교들도 부흥운동 기간 동안 급성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점점 더 늘어나는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 부족과 교사 수급 부족이 선교회에 당면한 현안 가운데 가장 시급한 문제가 되었다. 1903년 북감리교의 케이블은 이렇게 긴급하게 호소하였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미 등록된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이 필요하다. 현 교육 시설로는 말 그대로 도저히 수용할 수 없어 문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가장 빠른 시일 안에 건물을 세워야 하고 두 명의 교사를 더 고용해야 할 것이다.” 1904년 제물포의 남자 사립학교의 경우 40명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었으며, 시설이 부족하여 더 이상 학생들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새 건물이 지어지고 교사들만 확보된다면 학생들의 수는 현재보다 배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제물포의 여학교도 이전의 선교역사 중 가장 많은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어 남녀 학교 모두 놀랍게 번성하였다.
1907년 대부흥운동이 전국적으로 발흥하면서 미션 스쿨의 학생들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예를 들어 북감리교의 경우, 평양 지역에만 1906년 13개학교에 281명이 재학하던 것이 1907년에는 17개 학교에 473명으로 놀랍게 성장했다. 1909년 감리교의 케이블 선교사는 “우리는 교육 혁명의 한가운데 있다”고 보고하였다. 부흥운동을 통해 학교에 대한 필요성과 요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학교 문제는 선교의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것은 장로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평양 지역에서 활동하는 스왈른이 그 해 11월 1일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학교 문제이다. 모든 교회가 한 학교씩을 운영하고 있고, 몇몇 교회는 서너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선교 본부에 보고한 것처럼 학교 문제는 선교의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1907년 10월 현재 보통학교를 제외하고라도 여학교에 약 130명, 평양 숭실중학교와 대학에 약 400명, 합 5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장로교가 운영하는 학교에 재학하고 있었다.

 
서울의 경신학교(The Wells Training School)를 맡고 있는 북장로교 선교사 에드워드 밀러(Edward H. Miller)는 1907년 7월 11일, “지난해는 학교 개교 이래 가장 많은 126명의 학생들이 재학하는 가장 대단한 한 해였다”고 보고하였다. 경신학교는 1905년에 새 건물이 완공되었기 때문에 갑자기 늘어난 입학생들을 수용하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 1906년에 설립된 선천중학교도 부흥운동을 지나면서 학생수가 점증하기 시작했다. 1909년부터 미국의 파크 컬리지(Park College)를 졸업한 매큔과 샤록스가 학교 운영을 맡으면서 선천중학교는 장족의 발전을 거듭했다.


- 박용규, 평양대부흥운동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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