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9년 04월 10일/윌리암 부스 출생

구세군의 창설자이며 부흥운동가인 윌리암 부스(William Booth)가 1829년 4월 10일 노팅검에서 출생했다.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 속에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주의 일꾼들을 세우시고 그를 사용해 오셨다. 윌리암 부스는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고 사회개혁을 동반한 찰시 피니의 부흥운동방식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사회적인 개혁을 동반한 부흥운동,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알미니안 신학 이 모두가 부스의 신학적, 교단적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사역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역시 그의 현장경험이었다. 개혁감리교회를 떠난 부스는 런런 동부 빈민가에 하류층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이상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사역 10여 년 후인 1875년에 그가 이끄는 전도회는 32개로 증가했고, 런던 동부 빈민가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1878년에 스코틀랜드로 확산된 구세군운동은 곧이어 웨일즈, 아일랜드,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캐나다, 독일, 인도, 일본 그리고 드디어는 1908년에 한국에까지 도착했다. 이렇게 구세군 운동이 영국을 넘어 전 세계인들에게 호소력을 지니게 된 그 배후에는 윌리암 부스의 아내 캐더린 부스의 헌신적인 내조가 있었다. 그녀는 냉철한 지성, 유창한 화술, 탁월한 판단력에다 복음에 대한 열정을 겸비한 보기 드문 믿음의 여인이었다. 감정적이고 열정적이었던 윌리암 부스의 사역을 그녀가 완벽하게 보완해주었던 것이다.

-박용규 교수(한국기독교사연구소 소장, 총신신대원 역사신학)-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4.2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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