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04월 28일/ 고종의 금교령


왕실의 총애를 받으며 시작한 한국 개신교 선교가 1888년 4월 28일 고종의 전도금지령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갑작스런 고종의 전도 금지령은 당시 전도 여행 중이던 언더우드는 물론 몇 안되는 개신교 선교사들을 몹시 당황하게 만들었다. 

개신교 선교에 대해 그렇게 고무적이고 긍정적이던 고종이 전도 금지령을 내린 것은 위정척사파의 압력이 거셌기 때문이다. 서양의 종교야말로 한국의 전통문화를 파괴한다고 보았던 위정척사파들은 우리 민족 문화의 우수성을 주창하는 한편 유학을 가장 바른 학문, 곧 정학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특별히 개화파가 일제의 세력을 등에 업고 일본식 급진적 개화를 모색하는 마당에 왕실이 개신교에 대해 우호적이라는 소문이 척사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런 위정척사파의 압력이 고종의 전도 금지령의 배후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명동성당의 건축이었다. 왕궁이 훤히 대려다 보이는 명동의 언덕 위에 성당을 웅장하게 건립하려는 계흭은 왕실의 존엄을 손상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더구나 성당 건축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건축을 강행하자 천주교의 불손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5.0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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