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피니의 부흥이해

부흥이 성령의 부어지심이며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와 같은 부흥운동의 견해는 1730년경부터 찰스 피니가 등장하기 전 1830년경까지 미국 기독교를 지배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견해는 찰스 피니가 등장하면서 일대 수정을 받게 되었다. 찰스 피니를 통해 놀라운 부흥운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신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피니는 곧 부흥운동의 지도자로 부름 받았고 그가 가는 곳마다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부흥운동이 성령의 역사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인간의 노력에 의해 그것이 발흥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피니는 부흥이 기적이라는 견해를 거부하고 일정의 조건을 갖추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그는“부흥의 조건을 충족”시키면 부흥이“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된 모든 축복과 함께 올 수 있고 또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랫동안 교회는 부흥을 하나의 기적, 혹은 신적 능력의 개입으로 생각해왔다. 목사들이 일정한 수단을 사용하여 얼마든지 부흥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이다. .... 하나님께서는 부흥을 기적으로 이해하던 이론을 완전히 뒤집어 놓으신 것이다.” 

부흥에 대한 에드워드와 피니의 견해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윌리엄 맥로히린(William McLoughlin)의 말을 빌린다면“조나단 에드워즈와 피니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중세와 현대 사상의 차이이다. 에드워즈는 부흥을‘기도해야 할 것’으로 보았고, 피니는 부흥을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에드워드는 부흥이 기도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으나 피니는 부흥을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오늘날의 부흥에 대한 대부분의 견해는 에드워드의 부흥관에 근거하기보다는 피니의 부흥관에 더 기초하고 있는 것 같다.

피니는 이렇게 말한다.“당신이 왜 부흥을 체험하지 못하는 줄 아는가? 그것은 오직 하나의 이유 즉 당신이 부흥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것을 위해 기도하지도 않고 갈망하지도 않으며, 그것을 위해 별 노력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교회가 해야 할 모든 의무를 다 수행한다면 천년 왕국은 3년 안에 이 나라에 임할 수 있다. 만약 교회가 해야 할 모든 의무를 수행한다면 전 인류 복음화는 머지않은 날에 완성될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내가 알고 있는 몇몇 목사님들이 계속해 왔던 노력들을 온 교회가 한 몸이 되어 함께 하였더라면 지금쯤 이 땅에는 회개하지 않은 완고한 죄인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낙관론에 기초하는 부흥관은 전통적인 부흥회 스타일을 바꾸어 놓았다. 피니는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바치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앞으로 나와서 앞자리에 앉기를 호소했고, 은혜를 받기 위해 즉시 결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 같은 피니의 행동은 그의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의 주장은 다음 몇 가지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피니는 인간에게는 복음을 듣는 자들 스스로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인간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자신의 결단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둘째 이를 위해서 인간은 어떤 행동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을 반대하면 복음주의적 설교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피니는 말한다. 피니는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부흥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고, 교회가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적지 않은 교회사가들은 이 같은 피니의 낙관적인 부흥운동의 견해가 원죄를 부인하는 펠라기안적 인간의 본성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본다. 실제로 피니는 무조건적 선택교리와 불가항력적 은혜를 비롯한 칼빈주의 교리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인간의 원죄와 인간의 전적 부패의 교리를 반대해 프린스톤 신학자들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 기자명 관리자
  • 입력 2006.07.1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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