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에드워즈와 찰스피니의 부흥관 비교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책임, 인간 자신의 역할, 결단 여부가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견해는 역사적인 칼빈주의 인간론과는 대립되는 견해이다. 인간의 전적인 부패를 거부하고 인간의 결단 여부를 강조하는 결과 찰스 피니는 데이빗 웰스의 말을 빌린다면 자유주의로 이어지는 브릿지 역할을 하고 말았다. 찰스 핫지가 지적한 것처럼 “죄인들이 스스로 거듭날 수 있으며, 자신들이 원할 때는 언제든지 회개하고 믿을 수 있다고 하는 이 교리처럼 영혼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교리는 없을 것이다”


피니의 전통에 있는 자들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고 칼빈주의 전통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데 부흥에 있어서 이 두 가지는 서로 대립되는 의미가 아니라 두 가지의 균형과 조화가 요구된다. 신적 기원을 갖고 있는 부흥이 인간의 작품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며 그렇다고 인간의 책임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작품으로만 부흥을 이해해서도 안 될 것이다. 1949년 스코틀랜드 서쪽 열도 헤브리디스 부흥운동을 주도한 던컨 캠벨(Duncan Campbell)의 다음과 같은 고백은 참으로 깊은 교훈을 던져주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간사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믿는다. 하지만 인간의 책임을 제거한 부흥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리라고 믿었으나 자신들에게도 역시 할 일이 있다고 믿었다. 하나님께서는 부흥의 하나님이셨지만, 그들은 그 부흥을 가능케 하는 도구였던 것이다. 


부흥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이라는 에드워드의 견해는 인간의 책임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가 주권적인 선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자는 말씀과 기도와 실천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이라는 사실은 구원받은 자가 동시에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부흥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더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해야 하고 말씀대로 살고 이 나라와 이 민족 가운데 놀라운 부흥운동의 역사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부흥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이며 은혜이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께서 나와 교회와 이 민족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부흥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은혜를 겸손하게 간구하고 열망해야 한다.


마가의 다락방 120문도가 주님의 약속을 믿고 간절히 간구하고 기다렸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의 약속, 말씀을 굳게 붙들고 간절히 기도해야한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시들어 가는 영적 부흥을 안타까워하며 외쳤던 로이드 존스의 다음과 같은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부흥이 갈수록 자주 일어나지 않는 것은 칼빈주의의 쇠퇴 때문이다. 칼빈주의가 더 강력해진다면 우리는 영적 부흥과 대 각성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기자명 관리자
  • 입력 2006.07.12 11:00
  • 댓글 0
저작권자 © 평양대부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