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회개, 한층 깊어진 죄의식

이와 같은 죄의식에 대한 새로운 영적 각성은 1907년을 전후한 부흥운동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는 곳이면 보편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었다. 1908년 4월호 코리아 미션 필드에 “한국의 부흥운동”(the Korean Revival)이란 제목으로 실린 다음 사건 역시 그와 같은 영적 각성을 대변하는 또 다른 사례이다:

평양에서 온 한 젊은 학생이 탄광의 중앙 캠프 가운데 하나인 북진에 있는 한국인 교회를 방문하여 행한 설교는 교인들에게 대단한 감동을 주었다. 설교를 들은 이들 가운데는 회사 광석 사무실에 고용된 한 젊은 한국인이 있었는데, 그는 그곳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한국인 고용자로 평가받고 있었다. 신앙을 갖기 전 그는 시험에 빠져 여러 차례 작은 양의 금을 훔쳐 그것이 나중에는 상당한 액수에 해당할 만큼 쌓였다. 교회에 합류한 후 그는 그것을 바른 일에 사용할 기회를 얻기를 바라면서 금을 숨기며 살아 왔다. 그의 생활은 여러 가지 면에서 그 주변 사람들에게 본이 되기는 하였으나, 그는 내면에 숨겨진 죄로 인해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러다 성령의 강권적인 능력에 사로잡히자 내면에 숨겨진 죄악들을 완전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고, 도적질한 모든 금을 돌려주기로 마음에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사실을 털어놓는다는 것이 자신의 해직, 불명예, 책벌을 의미하는 것임을 잘 알면서도 어느 날 그는 광산 관리인을 찾아 그 금을 그들 앞에 두고 그의 죄를 고백하면서 여하튼 그들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져야만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이와 같은 행동은 그의 고용주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부지배인은 그에게 악수를 청하고 그의 정직한 행동을 칭찬해 주었고, 고용주들이 그의 죄를 용서하고 해고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이 신뢰받은 광산의 고용인은 과거의 굴곡(crookedness)을 바로 고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고용주들이 그를 믿을 수 있도록 더 강한 신뢰를 보여 주는 데 성공했다.

선교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집회는 바로 이와 같은 놀라운 축복의 원천이었다. 성경공부반(사경회) 외에 거의 모든 큰 규모의 교회들과 얼마의 작은 교회에서조차 일주에서 3주씩 계속되는 부흥회를 가졌는데, “이들 부흥회는 기도, 죄의 고백, 영적 회복, 과거를 바로잡는 시간들”이었다. 그 후에 참으로 죄를 용서받았다는 느낌, 중생의 확신과 정결케 하시고 능력 있게 예배를 드리게 하시는 성령의 부으심에 대한 기쁨이 잇따랐다. 그때 그들 대부분이 불렀던 찬송, 그들이 평양에서 부를 때 해리스 감독을 감흥시켰던 찬송은 “예수의 보혈밖에 없네”였다.
분명히 1907년 대부흥운동 이후 한국인들 사이에 뚜렷한 죄와 의에 대한 의식이 생겨났다. 부흥운동이 진행되고 있던 수개월 동안 부흥의 현장을 경험한 한 선교사는 이렇게 고백하였다:

부흥운동이 일어난 이래 지난 수개월을 되돌아보면, 그(부흥운동) 경험으로부터 태동된 바 특별한 결과가 눈에 띄게 돌출하는 것이 있다. 이것들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의와 죄에 대한 지식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한 기독교의 가르침은 죄의식과 의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지 않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다른 표준을 가지고 있던 한국인들에게 새로운 것이었다. 부흥운동은 교회의 심령에 놀라운 죄성과 의에 대한 영원한 의무감에 대한 깊은 인식을 남겨 주었다.

모든 부흥운동이 일어난 곳마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앞서 언급한 회개와 통회와 자복은 부흥운동이 얼마나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를 동반했는가를 말해 준다

-박용규,평양대부흥운동중에서-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6.20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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