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06월 10일/기장의 분열

아직 6.25 사변의 여파로 통행이 허용되지 않은 1953년 6월 10일 서울 동자동 한국신학대학 강당에서 제 38회 총회가 별도로 회집되었다. 전북, 군산, 김제, 경북, 경서, 충남, 목포, 충북, 제주 등 9개 노회 대표, 청년회원, 여전도회원, 호원동지 등 111명이 참석했다. "극단의 전투적 근본주의"를 배결하고, "헌법과 신앙의 자유를 유린하는" 기성 총회의 교권에 굴종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복음적이요 세계적인 전통을 지닌" 교회 설립을 천명하고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지도 이념을 발표했다: "1. 온갖 형태의 바리새주의를 배격하고 오직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얻는 복음의 자유를 확보한다. 2. 전 세계 장로교회의 테두리 안에서 건전한 교리를 수립함과 동시에 신앙양심의 자유를 확보. 3. 노예적 의존사상 배격, 자조자립정신 함양. 4. 고립주의 경계, 전 세계의 성도들과 협력 병진하려는 세계교회 정신을 철저. 5. 전적인 그리스도를 인간생활 전 부분에 증거하기 위하여 전진한다." 기독교 장로회는 이렇게 해서 태동되었다. 다섯 개의 선언에서 나타나듯이 기장은 복음이 인간 생활의 전 영역에서 증거되어야 한다는 기독교의 현실 참여를 핵심으로 삼았다. 이것은 종교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비롯 전 인간 생활의 현실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장은 1953년 총회에서 휴전반대 메시지를 발표하였고, 1954년에는 교단 명칭을 대한 기독교장로회로 고친 후 전통적인 예장의 신학을 떠나 진보적인 신학 노선을 구축해 왔다.

-박용규 교수(총신신대원 역사신학, 한국기독교사연구소) -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6.20 15:45
  • 수정 2020.12.18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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