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CA 초기 지도자들

 

1920년 06월 29일/ 한국 YMCA창립


1903년 10월 28일 황성기독교청년회라는 이름으로 서울 정동에 창설되어 우리나라 기독교 민족주의 운동과 민중계몽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YMCA가 조직을 확대 정비하여 1920년 6월 29일 정식으로 창립되었다. 초창기부터 한국의 민족주의 운동과 깊은 관계를 맺어온 YMCA는 한국의 기독교 민족운동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04년, 독립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풀려나온 이상재, 김정식, 남궁억, 유성준 그리고 윤치호가 가입하면서 YMCA는 민족주의 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YMCA는 기독교 운동을 종교 영역에만 제한시키지 않고 기독교 교육, 사회운동, 각종 운동에까지 확대시킴으로써 1920년대 이후 소홀히 다루어져 온 한국 기독교의 대 사회적인 책임의 완충 역할을 해왔다.

1908년부터 1919년 3.1운동까지 기독교 청년회는 종교활동은 물론 목공 철공 제화 사진 인쇄 등의 기술 교육을  실시하였고, 각종 토론회와 강연회을 통해 민중계몽운동을 주도해 왔다. 1921년부터는 세계 YMCA에 가맹하는 한편 기관지 <청년>을 발간하고 물산장려운동, 금주금연운동, 농촌운동을 전개하면서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기독교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6.20 16:23
  • 수정 2020.12.1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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