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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야말로 나라와 백성을 이롭게 한다
2008년 07월 04일 (금) 11:09:49 평양대부흥

 

교육이야말로 나라와 백성을 이롭게 한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이 한반도 전역을 휩쓸고 있는 동안 선교사들은 단순히 복음만을 전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동시에 우수한 젊은이들을 발굴하여 선교부가 운영하는 미션 스쿨에 보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 나라 젊은이들이야말로 장차 “모든 면에서 진리의 지식을 널리 전파하여 이 나라에 기독교 문명을 세우는 데 있어서 강력한 요소들이 될 것”이라고 희망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젊은이들을 바로 교육시키는 것이 이 민족의 복음화를 앞당기는 일이며 이 나라에 성숙한 기독교 문화를 정착시키는 첩경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존 무어는 평양대부흥운동 이후 1년 동안 그의 선교 구역에서만 150명의 젊은이들을 발굴하여 이들을 미션 스쿨에 진학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과거에도 후보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평양대부흥운동 이후 숫자는 이전보다 압도적으로 증가했다. 개성의 남감리교 선교회가 운영하는 한 학교에서는 평양대부흥운동 이후 학생들이 놀랍게 불어나 이들을 학교가 다 수용할 수 없을 정도였고, 1906년에 설립된 평양의 숭실학교도 부흥운동으로 학생들이 급증하는 바람에 교육 시설의 확충이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평양 숭실중학교와 숭실대학의 경우, 교장 베어드의 보고에 따르면, 1907년 11월 현재 신입생 255명을 받아 전체 숫자가 367명으로 늘어났으며, 이것은 지난해의 160명과 비교할 때 압도적으로 늘어난 숫자였다. 부흥운동이 한 개인의 각성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교육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고취시켰고, 영적 각성을 체험한 젊은이들은 교육의 기회를 열심히 찾아 나섰다.
선교사들과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모들에게 자녀 교육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었다. 대부흥운동이 한반도 전역을 휩쓸고 있던 그 즈음 예수교 신보에는 소학교 교육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쇼학교육(小學敎育)의 대지 지혜를 열니게 며 덕을 밝히게 과 아히들의 건장을 보젼나니 이치 교육으로 몸을 닥고 업을 일우게 즉 능히 나라와 셩을 리롭게 편게 을 각야 나라에 부강의 긔초가 될지라. 이러므로 문명 나라에 면시 고을과 궁벽 지방지 다 학교를 설립지라. 근일에 우리나라에도 쇼학교가 각쳐에 만히 잇스니 녀들을 만히 학교에 보내여 나라를 흥왕긔초를 굿게 이 올토다.  우리나라도 각 디방에 학교를 더 만히 설립고 교육을 힘쓸지니 부모 된 쟈 맛당히 녀를 공부식혀 나라 문명의 긔초가 되게 지니라.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선교사들과 한국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복음을 통해 이 민족을 영적인 잠에서 깨울 뿐만 아니라 교육을 통해 이 민족을 계몽해야 한다는 분명한 의지가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교육이야말로 “능히 나라와 셩을 이롭고 편게” 하고, 나라의 “부강의 긔초”가 된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당연한 의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환기시켜 주었다.
선교사들과 한국인 지도자들이 볼 때 자녀 교육은 이 민족을 향한 시대적인 사명이었다. 그들은 자녀 교육의 필요성을 권면하여 듣지 않으면, 외국처럼 부모들에게 벌금을 물리게 해서라도 자녀들을 교육시키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부모들에게 자녀를 교육하는 것이 부모의 책임임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었다. “녀를 교육 거슨 부모의 임이라. 그러나 부친은 샹 무를 인야 죵일토록 밧게 잇고 모친도  집안 일에 분쥬야 교육을 온젼히 힘쓰기가 어려운 고로 교 그 부모 신에 그 의무를 는 자라.”
부흥운동 이후 실제로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태도도 이전과 달라졌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으며, 청소년들이라면 소년 소녀 모두 교육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부흥운동을 통해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책임의식이 증대되면서 각종 학교의 설립 움직임이 자연히 강하게 일기 시작했다:

1907년 대부흥운동이 한국을 휩쓸고 있던 그 해 480명-믿어지지 않는 숫자-의 학생으로 신학교가 설립되었고, 북감리회는 249명의 학생을 가진 3개 고등학교와 3,538명의 학생을 가진 103개의 사립 보통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남감리회는 128명의 학생을 가진 중학교 하나와 82명의 학생을 가진 3개의 사립 보통학교, 그리고 33명의 여학생이 재학하고 있는 3개의 기숙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1907년 현재 평양에는 사립학교에 1,500명 이상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었고, 로빈스(Robbins) 여선교사가 운영하는 여학교에만 300명 이상이 등록하고 있었으며,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4,000명의 소학교 학생이 재학하고 있었다. 이 숫자는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처럼 부흥운동 기간 동안 많은 교회들이 사립 소학교를 설립 운영하였고, 중학교가 없는 곳에서는 지역 단위로라도 중학교를 운영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고 있었다. 그 한 예가 1906년 1월에 들어서면서 의주에서 있었던 한국인들에 의한 중학교 설립의 움직임이다. 1월 5일에 의주의 김창건은 의주에서 한국인들에 의한 중학교 설립 소식을 전하면서 이것은 순수하게 한국인들이 중학교 설립을 처음으로 추진하는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셔울과 평양에 즁학교가 잇스나 이 다 외국인의 쥬관 바이오 우리 동포 가운셔 설립 거슨 아직 업더니 직금이 형뎨의 교육에 힘씀이 서편 헤셔부터 몬져 시작되엿스니 이 쥬의 은 빗츨 나타냄이오, 우리나라헤 영광이라.

평양 장대현교회에서는 대학 설립이 심도 있게 논의되었고, 수백 원짜리 전답을 바친 사람이 육칠 명이 되고 심지어 칠팔백 원짜리 집을 바친 이도 있고 매년 5원씩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내겠다고 작정한 이도 있었다. 그날 모금된 돈이 무려 사천 삼백 원이나 되었다.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 평양 숭실대학이었다.
부흥운동은 어느 때보다도 교육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켜 주었다. 자녀 교육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1906년 3월 21일 그리스도 신문 논설에는 “학문을 힘쓸 것”이라는 제목 하에 부모에게 자녀들의 교육에 힘쓸 것을 호소하는 글이 실렸다:

······오직 각각 서로 그 녀를 교육여 구습에 우 거슬 씻고 문명 학슐에 나아가며 국가의 흥왕을 권쟝여야 이에 의 노예 되며 의게 패망 욕을 면지니 슬프다 동포여 일즉  날이라도 교육샹에 힘을 쓰 거시 곳 국가의 복이며 가의 만이니······침이 업스면 곳 금슈의게 갓갑다 엿스니 이 말이  올흔 말이로다. ······사이 식을 나흐면 귀다 랑다 나 덕과 학문을 침이업고 보면 곳 그 식으로 여곰 금슈를 르이니 귀다는 거시 거즛시오 랑다 거시  아니로다. 녀를 교육식히 은 부형의게 잇스니 부형 된 이가 만일 녀를 교육식히지 아니면 이 그 부형의 죄오, 그 죄가 얼마나 즁하냐 면 이 곳 망국패가(亡國敗家) 죄와 흘지니 엇지 삼가 힘쓰지 아니리오.

그러나 당시 교육의 기회가 남성들에게만 제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개신교 선교 초기부터 한국 교회는 남녀 모두에게 교육의 균등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과거 남성 위주의 사회 구조 속에서 교육의 기회가 남성들에게만 제한되어 왔던 사회에 여성들에게도 똑같은 교육 기회가 주어져 여성들의 지위를 한층 높여 주었다. 교육이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것이다.

-박용규,평양대부흥운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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