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펜너의 개혁정신


슈펜너가 말하는 개혁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개혁”이라는 단어 앞에 붙은“하나님이 기뻐하시는”이라는 수식어를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당시 교리를 강조하면서도 사변주의와 합리주의로 흘러 생명력을 상실한 교회를 향해서 외친 일종의 자성이었다. 거룩한 경건의 회복을 촉구한 것이다. 슈펜너는 매우 과감하게 그러면서도 매우 겸손하게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첫째, 기성교회 전체를 소위 싸잡아 매도하지 않았다. 기성교회 모두를 “부패” “타락” “영적상실”의 집합체로 소위 싸잡아 매도하는 결례를 범하지 않았다. 그는 서문 첫 문장에서 선배와 동역자들을 향해“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참 사랑을 받으며 많은 존경을 받는 아버님과 같은 선배님과 동역자 여러분들”이라며 언급했다. 종종 교회 개혁을 외치는 자들에게 찾을 수 있는 독선을 슈펜너에게서는 읽을 수 없었다.


둘째,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 슈펜너는 개혁운동을 전개함에 있어서“내가 첫 번째가 아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다른 진실된 기독교의 신학자들이 이미 오래 전 여러 차례 자신들의 공개된 글 가운데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졌습니다. 그러기에 그러한 요망을 공개적으로 제시하고 게다가 그에 대한 제안을 내놓았던 첫 번째 사람은 내가 아닙니다.”교회 개혁을 자신의 독창물 혹은 전유물로 삼으려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던 것이다. 종종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우리들의 모습과는 적지 않은 간극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슈펜너 자신 또한 개혁의 대상에서 자신을 제외시키지 않았다. 그는 <경건의 열망> 서문에서 이렇게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만약 주님의 나라에서도 인격의 서열과 가치에 따라 평가되어지는 세상나라와 같다면 나는 내 자신을 돌아볼 때 마땅히 맨 마지막이 될 것을 깨닫습니다. 다행스럽게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는 그러한 자도 멸시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은 위로가 됩니다.”

이어 그는 자신의 한계와 겸손을 진솔하게 밝힌다.“나 역시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는 가운데 주제 넘는 생각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진정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사랑 가운데서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무엇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만을 신뢰한다거나 어떠한 사실들을 세상에 떠벌리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셋째, 그는 사역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개혁을 실천에 옮겼다. 슈펜너는 목회자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일깨워주려 했다.“하나님께서 친히 피 흘려 가장 값지게 사신 그 교회를 목양하는 일에 우리를 불러 주셨다!”는 것이다. 목회 사역에 충실하지 못할 경우

“여러 가지 모양으로 황폐화된 영혼들에 대한 책임을 우리의 손으로부터 요구할 그 심판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 것이다. 슈펜너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의 목회 사역을 마무리할 후일 내가“얼마나 많은 지식을 소유했으며, 그 지식을 얼마나 세상에 발표하였으며, 세상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인정을 받았으며, 그러한 명성을 어떻게 유지시켰고, 어떠한 영광 가운데 활동하였으며, 얼마나 위대한 이름을 세상에 남겼는가 ... 얼마나 많은 물질의 부를 소유하였는가” 하는 물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우리가 얼마나 신실하게 그리고 순전한 심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데 힘썼는가”하는 일이다. 슈펜너는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선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좋은 본보기로서 순수하고 바른 교리와 더불어 자기 자아의 보습을 부인하면서 우리 구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를 따르는 가운데서 얼마나 자신들에게 맡겨진 양떼들의 경건한 삶을 위해서 노력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열정을 가지고 오류와 하나님이 없는 삶에 대적하였으며, 어떠한 확신과 기쁨 가운데서 분명 하나님을 떠난 세상과 오류 가운데 있는 형제들로부터 오는 시련과 불쾌함을 감수했으며 그러한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 하나님을 얼마나 찬양하였는가 하는 자신을 향한 물음은 너무도 중요한 것입니다!”


목회자는 세상적인 기준에 의해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평소 자신들이 외치는 대로 영적 가치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이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주의 종들은 자신이 맡고 있는 교회나 여타 하나님의 교회의 부족이 어디에 있는지, 그들이 앓고 있는 병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하고“그에 대한 처방을 성령의 빛 가운데서 또한 찾으며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이것은 참된 경건의 실천을 통해서만 도달될 수 있다. 


목회자의 책임과 그 의무가 얼마나 큰가를 인식하되 참된 경건의 실천이 병행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개혁운동은 아무런 힘도, 아무런 능력도 발휘할 수 없다. 목회자는 자신의 경건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은 물론 그 이상을 수행해야 한다. 그 이상이란 자신의 경건 유지만 아니라 영적으로 병든 수많은 영혼들을 치료하여 영적 건강을 회복하도록 독려하는 것을 의미한다. 슈펜너가 말하는“경건의 열망”속에는 경건의 실천이 함축되어 있다. 목회자들의 경건은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목양의 현장”을 염두에 둔 경건이어야 한다. 그래서 슈펜너는 독자들(목회자들)에게 이렇게 간곡하게 부탁한다.


“아울러 우리 모두는 진정한 경건생활을 이룩하여 서로를 도우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말씀의 문들을 방방곡곡에서 열어 보이며,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함에 풍성한 열매를 거둬들이고, 그러한 하나님의 일 가운데서 우리가 기쁨을 누리며, 확신 가운데서 또한 증거하며, 그분의 이름을 교리와 삶과 고난을 통하여서 참으로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기도와 간구로 선한 싸움을 정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슈펜너에 의하면 자기 자신의“진정한 경건”이 없이 교회개혁은 불가능하다. 종교개혁 이후 신학이 사변주의로 흐르고, 박해 이후 기독교 정치지도자들과 목회자들이 자신의 이권과 영리에만 몰두한 나머지 영적경건을 게을리하는 것을 보면서“아주 오랫동안”마음 속 깊이 새겼던 양심의 염려를 겸손하게 피력한 것이다. 그의 외침은 경건을 상실한 당대 교계에 적지 않은 도전과 파문을 일으켰다.


슈펜너가 간파한 또 한 가지는 박해 후에 찾아온 교회의 세속화였다. 종교개혁 이후 반종교개혁을 기치를 든 제수잇이 등장하면서 수많은 개신교도들이 종교재판이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잃었다. 하지만 교회 성장은 중단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가속화되었다. 슈펜너가 정확히 읽은 대로 그러한 핍박이 종종 교회의 성장에 놀라운 활력소를 부여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하나님의 교회가 가장 잔인한 환난에 섰을 때, 거기는 곧 쉬지 않고 황금을 만들어 내는 뜨거운 불 위의 가마솥 같았습니다.”초대교회 유세비우스가 증언하는 것처럼 기독교 박해는 오히려 복음의 축소나 위축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복음의 확장을 가져다 준 원동력이 되었다. 성도들의 수는 증가하였고,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가장 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유세비우스가 지적한 것처럼 황제숭배로 대대적인 박해를 가했던 사탄이 그 방법을 가지고는 교회를 말살할 수가 없다고 판단 다른 방법을 사용한 것처럼 종교개혁 이후 사탄은 교회가 박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자 다른 방법을 동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슈펜너의 말을 직접 빌린다면 사탄은“교활해져서 다른 종류의 핍박들을 동원하기 시작했습니다.”박해라는 단순한 물리적 핍박을 지양하고 새로운 기술, 새로운 수단을 동원한 것이다. 때로는 압박, 협박, 달콤한 약속, 세속적인 환상, 그리고 진정한 복음주의적 지도자들을 몰아내는 방법으로“병든 기독교”를 만들려고 하였다. 실제로 그 효과는 대단했다.


“마치 고대교회에서 이교도의 황제 쥴리안이 많은 성도들을 변절로 몰아넣었던 것처럼 그러한 종류의 핍박은 하나님의 교회에게 물론 그 당시와 같은 많은 피흘림이 없다 치더라도 루피우스가 분명히 경고했듯이 이전보다 매우 위험하기 그지없는 것입니다.”그러한 고도의 술책은 실질적으로 불과 칼을 쓰는 박해방법보다 교회에 더 많은 상처를 안겨주었다. 과거 박해를 통해 기독교를 말살하려다 먹혀들지 않자 이단과 세속화 방법을 동원했던 사탄의 책략이 종교개혁 이후에도 강하게 나타난 것이다. 적지 않은 지도자들은 사탄의 괴략에 넘어가 종교개혁 이후 불과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심각한 병에 걸린 것이다.


슈펜너는 당시 새로운 방법을 동원하여 기독교 세력의 힘을 꺾고 있는 사탄의 괴략을 정확히 읽었다. 기독교정치지도자들과 신학자들 및 목회자들 가운데 사탄의 괴략이 먹혀들고 있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상당수의 기독교 정치지도자들은 혈안이 되어 자신들의 이권만을 챙겼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왕적 권위와 통치권을 부여받았으면서도 그러한 권세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은 소홀한 채“죄와 세상물욕 가운데서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며 그러한 생활을 당연시”하였다. 적지 않은 시 참사회원들이“영적인 것을 전혀 생각지 아니하고”자신들의 이권만을 챙기며 호화로운 삶을 열정적으로 추구했다.


참으로 기독교 정치지도자들과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는 데는 대단한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는 침묵하고 있었다. 종교개혁 이후 카톨릭의 굴레에서 개신교의 자유와 정치적인 자유를 주셨는데도 기독교 정치지도자들이 그 은혜를 잊고 자신들의 배만 채우는 일에 급급했던 것이다.“마치 황제의 권세가 교회를 무책임하게 억눌렀던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돕기보다는 지배하고 그 권세를 향유하는 데 사용하였습니다.”심지어 이중 일부는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이 선한 일을 준비하고 추진하는 일을 방해하기까지 하였다.


사탄의 괴략 앞에 무력하기는 영적 지도자인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슈펜너의 말을 직접 인용한다면 목회자들마저 “완전히 썩었습니다.”한 고대 교부가 말한 것처럼 잎들이 계속해서 말라가는 나무가 있다면 그 나무는 뿌리에 문제가 있는 것이며, 만약 사회 국가 교회가 부패하다면 참된 성직자들이 그 나라에서 찾기 힘들구나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슈펜너는 당시 사회와 국가와 교회의 부패와 무능이 목회자들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간파했다. 신앙과 삶, 신앙과 신학의 괴리는 목회를 병들게 하고, 병든 목회는 다시 힘없는 교인을 양성하여 사회와 국가를 병들게 만드는 악순환이 계속된 것이다. 참된 경건의 회복 없이는 병든 교회와 사회를 치유할 수 없다. 


종교개혁자들에게는 바른 교리와 바른 신앙의 실천이 별개로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외치는 대로 살았고, 실천하는 대로 외쳤다. 당시 부패한 기독교 정치지도자과 영적 생명력을 잃어버린 목회자들 중에는 바른 신앙과 바른 삶을 병행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슈펜너가 지적한 대로 많은 사람들이“세상의 유행”을 따라간 반면“바르게 기독교를 이해하고 실천”에 옮기는 이들은 참으로 소수였다. 목회자들이 외형적으로는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그래서 겉으로는 흠이 없어 보이지만“그러나 그들의 추구는 육체적 쾌락, 눈의 쾌락 그리고 호화로운 궁정 속의 삶 같은 데서 보람을 느낍니다. 이러한 교활한 삶의 모습 가운데는 세속적 정신(Weltgeist)이 주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에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기독교의 첫 번째 실천원리는 결코 한 번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 독일에는 무서운 세속화의 물결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 배후에서 사탄이 그들을 조정하고 있었지만 절대 다수의 지도자들은 그것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지 못했다. 종교개혁의 정신이 시들어 가고 성직자들의 거룩성이 침식을 당하고 있는 당대의 현실을 보면서 그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슈펜너는 세속화의 물결 속에 물들어 가고, 그럴 가능성이 농후한 자신도 역시 개혁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 것이다:


“내 자신 역시 예외는 아니다. 우리 직분에 부여한 참된 영광을 도적질했습니다. 그것은 마땅히 하나님과 주의 몸된 교회 앞에서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디에 내 자신 역시 부족한가 하는 점을 더욱더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내 자신도 그러한 문제를 동지 의식을 갖고 생각하며 풀어 나가려고 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가장 슬픈 사실은 그러한 비극의 부패 가운데서 우리의 양심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지 못하는 그 현실입니다. 우리 성직자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공공연한 추문으로부터 깨끗한 사람들을 발견할 수 없는 현실 또한 슬픈 일 것입니다.”


슈펜너는 자신도 개혁의 대상이라고 이해했다. 개혁에서 자신을 결코 제외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슈펜너는 이 때문에 개혁의 외침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외치는 대로, 자신의 바라는 대로 실천하면서 개혁을 추진했다.


  • 기자명 관리자
  • 입력 2006.07.2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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