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펜너가 제시한 교회 개혁을 위한 여섯 가지


경건의 실천, 실천적 신앙, 바른 삶에 대한 강조가 교회 안에 끊임없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교회는 슈펜너가 구체적으로 제안한 몇 가지 제안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가까이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하게 거하면 거할수록 우리들은 보다 풍성한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일상적인 설교 외에 말씀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더욱 많이 제공해주어야 한다. 각 개인은 성경을 읽거나 공부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많이 갖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교회 안에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열심히 연구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한다. 우리는 루터의 다음과 같은 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필립 슈펜너가 섬기던 교회


“마치 나의 모든 책들이 사라지고 없어진 것처럼 나는 기꺼이 생각했습니다. ...적게 글을 쓰고 그 대신 보다 많이 성경을 연구하고 읽게 되는 그것이었습니다. ...공회 혹은 교부들 그리고 우리가 이룩하였던 그 어떠한 좋은 것도, 하나님 자신이 만드신 성경보다는 그 높음과 선함에 미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위치에 두는 상황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본인의 책들을 누구든지 구입하려고 하는 자들은 결코 그러한 책들이 성경자체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결코 장애물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둘째, 영적 제사장직의 바른 정립과 이를 위한 열심 있는 노력이 있어야한다. 이것은 루터가 말한 바 만인제사장 원리를 말한다. 우리 모두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사역으로 말미암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제사장이 되었음을 기억해야한다. 베드로 사도 역시“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강조한다. 성직자들만이 영적제사장이 아니라 모든 구원 받은 사람들 모두가 영적제사장이다.


주의 종이나 평신도나 우리 모두는 영적제사장이다. 슈펜너의 말을 빌린다면“자신 만이 영적 직분에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고 그 말씀을 연구하고 훈계하고 위로하고 책망하는 일을 오직 혼자만의 일로 생각하는”성직자야 말로“소명감도 없고 책임감도 없는 성직자”이다. 이들은 만약 평신도들이 이 일에 관여하면 영적직분인 목회자의 직분을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슈펜너가 볼 때 당시 교회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모든 일이 오직 목회자 한 사람의 손에 달린 것으로 생각”하는 일이었다. 평신도들에게 영적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교육하고 그대로 실행에 옮기도록 한다는 것은 결코 목회자에게 손해가 아니다. 오히려 역동적으로 영적인 일에 동참하도록 독려함으로써 주의 사역이 능동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셋째, 기독교의 존립은 앎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함에 있다. 사랑의 사도 사도요한이 지적한대로 아는 것보다 더 중한 것은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일이다. 그가 기록한 요한복음과 요한 1,2,3서 그리고 요한 계시록은 사랑의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그대로 보여준다. 사도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자녀들아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고 계속해서 강조한다. 사도요한이 날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자 짜증이 난 한 제자가 왜 우리에게 그 한가지만을 설교하냐고 묻자“그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만약 그 명령이 이루어진다면 그것만으로 족하기 때문입니다”고 대답했다.


넷째 신학논쟁에 있어서 지혜롭게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신학적인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단이나 잘못된 가르침을 교회가 수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류에 빠진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그들에게 겸손과 지혜로 말과 행동에 본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잘못된 신앙을 가진 이들의 신앙과 신학을 경계하면서도 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슈펜너는 이단과 연관하여“물론 우리는 그들의 불신앙과 잘못된 신앙이 더 이상 퍼져나가는 것을 싫어하고 최선을 다해 이를 저지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이러한 불신자들, 잘못된 신앙을 가진 자들을 대하여서는 말할 것도 없이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학을 하는 자들과 목회자들은 교리의 순수성과 하나님 말씀의 순수성이 보존되는 것이 신학서적을 통해서만 아니라 진정한 회개와 거룩한 삶을 통해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진정한 교회 개혁을 실천하고 구현하기 위해서는 신학교에서부터 신학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 개혁은 신학교 안에서 신학생을 통해 먼저 실천에 옮겨져야 한다. 좋은 인재가 사회와 국가에 필요하듯 교회에도 좋은 인재 발굴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오늘날 신학교는 위기를 만나고 있다. 신학교 지원자가 줄어들고 있고, 그들의 수준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유수한 대학교 출신들이 교회로 몰려들던 시절은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으며, 지원자들의 학력수준이 해마다 하향하고 있다. 지원자들의 영적인 수준의 하향은 더욱 심각하다.


신학교 입학할 때 이미 반(半) 목사가 되어 입학하던 과거와는 다릴 입학생 중에는 세속에 깊숙이 물든 자들이 참으로 많다. 신학교에서 이들을 교육시켜 목회자의 자격을 갖추도록 만들어야 하지만 이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이 외국 유학을 마치고 교수로 채용된다면 신학교의 수준은 더욱 낮아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도 강도 높은 신학교육, 경건의 훈련이 요청된다. 신학교가 신학생들을 철저하게 훈련시켜 영적야전사관으로 만들어 세상으로 파송할 때 목회 현장에서 세속화에 물든 그리스도인을 훈련시켜 영적군사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신학생들은“성도의 경건한 삶이 그들의 학문에의 노력 그리고 학문하는 그 자체보다 결코 덜 중요하지 않음을 쉬지 않고 바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이들 중 그 어느 하나라도 없다면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옛날 저스틴의 그 유명한 말은 언제든지 우리의 기억 가운데 살아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함에 있습니다.”신학은 신앙의 실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것은 슈펜너가 말한 대로“신학이 하나의 신앙의 실천이기 때문입니다.”요한 슈미트(Johann Schmidt, 1594-1655)가 경고한 것처럼 신학교에서 신학 자체를 중시하면서도 실천이 결여되어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된다.


“만약 신학대학이나 종합대학교에서 학문에 최선을 다하면서, 전혀 바른 목적을 가지지 않을 때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우상숭배입니다. 바른 목적이란 하나님이 존귀케 되는 것, 더 분명히 말씀드리면 참되고 오류에 빠지지 않는 기독교, 즉 바른 신앙심과 기독교적 덕을 진심으로 쌓아가는 연습을 보다 더 확고히 하고 실천에 옮김으로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본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이를 위해 신학교에서 경건의 훈련이 뒷받침 되어야합니다. 아브라함 칼로브(Abraham Calov, 1612-1680)의 말대로 경건의 훈련은 다음 몇 가지 이유로 신학교육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1.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부탁한 것이기 때문이다.

2. 성령께서는 죄의 노예가 된 심령에는 거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3. 신학생은 육에 속한 것이 아닌 영적이며 거룩한 하나님의 진리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4. 신학은 단순히 하나의 학문이 아니고 마음의 감동 그리고 실천에 있기 때문이다.

5.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6. 진리는 사악한 심령에는 거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7. 레위인들이 성막에 들어가기 전 몸을 정결케 하듯이 주님의 전에 들어가고 나오는 자들은 자신의 생활을 성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학교는 신학생들의 신학지식 함양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졸업 후 성공적으로 목회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들을 영적인 군사로 훈련시키는 것이다.“바른 삶의 모든 경건 연습을 신학생들이 신학 수업 초기부터 참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실천에 옮긴다면 모든 신학 수업을 마친 후에도 자신들의 전 생애 동안 많은 열매들을 스스로가 거두어들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신학교는 단순히 학문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신학생들의 경건훈련에 대한 책임도 부여 받았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신학교 교수는 신학생들을 지적 능력으로만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바람직한 신학교육은  사도적 단순성으로 돌아가 신학교육을 실시하는 일이다. 슈펜너는 이를 위해 교수들이 신학생들을 영적으로 훈련시키고 그들을 지도하기 위해 학생들 중 경건의 연습을 통해 참된 종으로 지어져 가기를 원하는 소수의 신학생들을 직접 훈련시킬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들과 신약성경을 함께 읽고 연구하도록 권유한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경건훈련을 위해 경건의 연습에 힘쓸 수 있는 장을 가져야 할 것이다.


여섯째, 설교는 성도의 경건에 맞추어져야 한다. 설교는 설교자의 화려한 수사학이나 학식 자랑을 위한 도구가 아닌“성도들의 삶과 그들의 수준에 맞추어져야 합니다.”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여 움직이게 하여야 할 것이다. 목회자는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그의 인치심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살아 움직이며 또한 위로하심을 체험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설교의 초점을 사람의 변화에 두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삶 속에서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삶의 전 영역 속에서 증인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기도 역시 입술만의 기도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참되고 가장 의미 있는 기도는 우리의 내적 인간 안에서 행해지는 것입니다. 그 기도는 말씀과 더불어 행해지는 기도요 또는 영혼의 기도입니다. 이러한 기도가 하나님을 만날 것이며, 발견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슈펜너가 제시한 핵심은 말씀을 더욱 더 가까이 하고, 만인제사장 원리를 재확인하면서 삶의 실천, 실제적인 경건훈련을 제시하는 신학교육의 개혁, 경건과 인간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설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 기자명 관리자
  • 입력 2006.07.2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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