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ell Harris
하웰 해리스와 웨일즈 부흥운동

휘필드와 동시대에 웨일즈 부흥운동에 중요한 공헌을 한 인물이 하월 해리스였다. 1714년 트레베카(Trevecca)라는 작은 마을에서 출생한 그는 학교 선생이 되었다. 당시 부흥운동의 지도자들이 그런 것처럼 해리스에게도 극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그 변화는 1935년 3월 30일에 일어났다. 탈가트에 있는 교구교회에 참석하였을 때 그 교구 목사는 다음 주일에 거행할 성찬에 대한 광고 중 합당하지 못한 사람은 성찬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만일 여러분이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합당치 못하다면 기도하기에도 합당치 못할 것이고 살기에도 합당치 못할 것이고 살기에도 합당치 못하다면 죽기에도 합당치 못할 것입니다.” 


교구 목사가 광고 시간에 한 말은 해리스의 잠자는 영혼을 깨웠다. 비록 죄 된 생활 가운데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저 무덤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해리스는 교구 목사의 말에 강한 도전을 받았다. 그는 다음 주일 성찬식 예배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리는 중에 죄의식을 깨닫고 깊은 고뇌에 빠졌다. 이와 같은 죄에 대한 고뇌는 1달 이상 그를 괴롭혔다. 그런 죄의식은 5월 25일 성령강림주일 성찬식 때까지 계속되어 이날 예배 중에 다시“마귀와 엄청난 싸움”을 벌이며 투쟁하기 시작했다. 이 투쟁에서 결국 해리는 자신의 죄 용서의 확신을 얻게 되었다:


“성찬식 때, 십자가에서 필 흘리신 그리스도께서 끊임없이 내 눈 앞에 서 계신 것 같았습니다. 능력이 내게 주어져서 그 피로 말미암아 용서를 받았다는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나는 나의 짐을 벗었습니다. 나는 기뻐 뛰면서 집으로 가서 슬퍼하는 내 이웃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왜 슬퍼합니까? 내 죄가 용서 받았음을 나는 압니다. 비록 내가 이 책(경건의 실천, The Practice of Piety) 밖에서는 그러한 것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오 복된 날이여! 언제나 그것을 기억하고 더욱더 감사했으면 좋겠습니다!”


해리는 분명한 영적 체험을 했다. 곧 자신의 죄가 용서 받았음을 확신했다. 1735년 6월 18일 그는 교회의 종탑 안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다 또 한 번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다. 이것은 이전의 모든 체험을 무색하게 할 만큼 엄청난 체험이었다. 로이드 존스의 말을 빌린다면“그것은‘불’의 세례 또는‘능력의 세례’”였다.


“갑자기 내 마음이 불 앞의 초 같이 녹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내 구주를 주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나는 사랑과 평안을 느꼈을 뿐 아니라 죽어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은 간절한 열망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내 영혼 속에서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아바 아버지’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부르는 일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의 자녀라는 것을 알았으며, 그가 나를 사랑하시고 내 말을 들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마음은 만족하여 울부짖었습니다. 이제 나는 만족하다고! 제게 능력을 주십시오. 그러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주를 따라 가겠나이다 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이미 회심했고, 죄사함을 받았으며, 기쁨으로 충만했지만 다시 중차대한 체험을 경험했던 것이다. 그가 은밀하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 후 모든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고 순전한 사랑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린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에게 부어져“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게 되었습니다.”일생동안 그를 지배했던 영적 체험을 경험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였다. 그 후에도 그는 그와 같은 은혜를 반복해서 체험했다. 그는 새벽 2시까지 취한 사람처럼 혼자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거나 주께서 도저히 반항하거나 의심할 수 없는 강력한 급류처럼 그를 압도하시는 것을 경험했다.


1735년 6월 18일 강력한 성령의 임재와 충만을 경험한 해리스는 곧 불타는 전도자가 되었다. 그의 심령은 성령 충만을 경험한 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구원받지 못한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랐다. 성령충만의 일차적 결과는“영혼을 향한 관심”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 대한 긍휼”이었다. 사도행전 1장 8절이 보여주는 것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복음전도에 큰 관심을 갖는다.“구원받지 못하고 멸망해 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그의 영혼을 삼킬 정도로 강했습니다.”

Howell Harris가 설립한 Trifecca a College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죄를 각성하고 회심을 경험했다. 1750년까지 이와 같은 영적각성은 계속되었다. 그가 메시지를 외치는 곳마다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임했다. 해리스 자신의 표현을 빌린다면“주께서 능력으로 임하셨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기술했다.“이제 너무나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가 모이는 집들로는 그 사람들을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말씀을 전할 때 큰 능력이 함께 임하여 그곳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지금까지 칼빈주의 감리교 지도자 조지 휘필드와 하월 해리스를 통한 영적각성운동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첫째 칼빈주의와 부흥이 결코 반립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현상이다. 놀라운 부흥, 참된 부흥은 칼빈주의 신앙이 바르게 선포되는 곳에서 발흥했다. 로이드 존스의 말대로 냉랭한 칼빈주의는 참된 칼빈주의가 아니다.


둘째 부흥운동의 지도자들은 특별한 영적체험을 경험했다. 휘필드, 해리스, 조나단 에드워즈 모두 이와 같은 영적체험을 경험했다. 이 영적 체험은 성령세례의 경험이 아니라 개혁주의적인 용어를 빌린다면 성령충만의 체험이다.


셋째 이와 같은 영적인 체험 이후 나타나는 두드러진 현상은 복음전도열이다. 불신 영혼을 사랑하고 그를 구원하고자 하는 강력한 구령의 열정이 이들에게 찾아왔다. 복음전도자로 부름 받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넷째 이들의 메시지방식은 역동적이고 성령 안에서의 자유가 있는 설교였다. 조나단 에드워즈를 제외하고 휘필드와 해리스 역시 충분한 준비된 설교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와 감동 속에 영감의 메시지를 전했다. 성령께서 주시는 대로 전한 것이다.


로이드 존스의 말을 빌린다면 그것은 계시가 아니라 영감이었다. 오늘날 설교자들은 이 시대 복음의 메시지가 너무 규격화된 틀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이것이 성령의 역동성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철저하게 메시지를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그 메시지를 소화된 가운데 성령의 임재와 능력 가운데 전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기자명 관리자
  • 입력 2006.07.2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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